‘힘 빠진’ 공업도시 딱 맞게 ‘웨어러블 로봇’ 입는다

 

현대차 ‘엑스블 숄더’·삼성 ‘봇핏’ 판매

장밋빛 전망 비해 제도·인프라는 미비

 

군포산업진흥원, 혁신기반 사업 공들여

국내 최초 실증센터 내년 상반기 조성

컨소시엄 협력·인근 지역까지 허브로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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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시는 한때 공업도시로서 번성했다. 그러다 2000년대 들어 수도권 공장들의 지방 이전이 촉진돼 군포지역 산업의 주축이던 대기업 사업장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지역 경제는 서서히 활력을 잃어갔다. 산업적으로 장기간 일종의 ‘공동화’ 현상을 겪으며 성장세도 더뎌졌다. 공백을 메워 어떻게든 도시의 경제적 활력을 되찾아야 했다. 군포시의 오랜 고민이기도 했다.

전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해온 시는 산업통상자원부가 내건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을 놓치질 않았다. 발전 역량을 갖추고 있지만 자금, 인력, 장비 등이 부족해 기술 혁신을 현실화하기 어려운 중소·중견 기업들에 공공차원에서 연구 개발, 측정·시험 분석, 시제품 개발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전체 사업비 중 절반가량을 국비로 지원받을 수 있지만 분야를 특정해 어떤 지원 인프라를 갖출지 등을 일일이 설계해 정부에 제시해야 했다. 군포산업진흥원은 고민을 거듭했다. 성장세에 있으면서도 관련 제도나 인프라가 취약해 보완이 필요한 산업, 그 중에서도 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산업이어야 했다.

2019년 CES에서 처음 공개됐던 삼성전자의 웨어러블 로봇. 삼성전자는 최근 ‘봇핏’의 상표권을 출원하는 등 연내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19년 CES에서 처음 공개됐던 삼성전자의 웨어러블 로봇. 삼성전자는 최근 ‘봇핏’의 상표권을 출원하는 등 연내 출시를 계획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 열쇠는 ‘웨어러블 로봇’

군포산업진흥원이 찾은 해답은 로봇, 그 중에서도 웨어러블 로봇이었다. 산업진흥원은 “군포시는 지역경제 성장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몇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다. 공장 설립과 관련, 수도권 규제가 여전해 지역 내에 공장을 세울 토지가 부족하고 땅값도 비싼 편이다. 그런 취약점이 걸림돌이 돼 아예 발상을 전환해 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다른 지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업종들만 우리 지역에 있었다. 경쟁력은 차별성에서 비롯된다는 판단이 생겼다. 독자성을 갖춰야 했다. 또 땅이 좁고 주택은 많은 지역적 특색을 고려할 때, 부지를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사고 위험성 등이 적어 주민들의 수용성이 높은 산업이어야 했다”며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은 선정 기관들에서만 해당 사업을 주도할 수 있어 독자성을 갖는 산업을 육성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대규모 장치 산업이 아니라 지식기반형 산업, 성장세가 점쳐지지만 초기단계에 놓여 시가 시장과 기술을 선점할 가능성이 있는 산업이 뭐가 있을지 고민 끝에 ‘웨어러블 로봇’에 도달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이 올해부터 상용화하는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 /로보틱스랩 제공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이 올해부터 상용화하는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 /로보틱스랩 제공

웨어러블 로봇은 말 그대로 입을 수 있는(wearable), 몸에 착용하는 로봇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보행을 돕거나 건설 현장에서의 산업 재해를 줄이는데 기여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목하고 있다. 국내·외 유수 대기업들도 앞다퉈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8년부터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 관련 연구를 지속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의 공식 판매를 시작한다. 최근 웨어러블 로봇 ‘봇핏’의 상표권을 출원한 삼성전자 역시 연내에 봇핏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성장 전망이 뚜렷하지만 발전 속도에 비해 관련 제도나 인프라는 미비한 편이다. 인체에 착용하는 제품인 만큼 안전성 문제 등이 중요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와 관련한 표준 인증 방식이나 시험 방식 등은 아직 제대로 갖춰져있지 않다.

정부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 중 웨어러블 로봇분야 사업에 참여하는 군포산업진흥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고등기술연구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 관계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군포산업진흥원 제공
정부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 중 웨어러블 로봇분야 사업에 참여하는 군포산업진흥원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고등기술연구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 관계자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군포산업진흥원 제공

■ 군포시를 웨어러블 로봇 산업 메카로

산업진흥원은 웨어러블 로봇 분야를 특정해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에 도전했다.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 고등기술연구원, 한국로봇산업진흥원, 한국로봇산업협회와 컨소시엄을 이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지난해 6월 사업을 실시할 곳으로 낙점돼 그해 11월 협약을 체결했다. 지원받는 국비만 100억원이다.

이에 산업진흥원은 국비 지원을 토대로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를 조성한다. 국내에서 웨어러블 로봇 관련 실증 인프라가 구축되는 것은 처음이다. 군포 부곡동에 소재한 현 진흥원 건물을 리모델링해 센터를 만들 예정인데, 내년 상반기가 목표다. 센터엔 웨어러블 로봇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의 성능과 안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장비들이 두루 갖춰진다. 웨어러블 로봇을 연구, 개발하고 싶지만 고가의 장비를 자체적으로 갖추기 어려운 중소·중견기업들이 해당 센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컨소시엄을 이룬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은 시험 평가 부문을, 고등기술연구원은 기술 관련 각종 컨설팅을 각각 담당한다.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은 개발된 웨어러블 로봇의 인증을 지원하고, 한국로봇산업협회는 회원 기업들의 제품 홍보와 판로 개척 등을 도울 예정이다.

단순히 관련 기업들을 지원하는 일뿐만이 아닌, 국내에 미비한 로봇 관련 평가제도와 각종 표준 등을 만들어가는 게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다. 가파른 성장이 점쳐지는 웨어러블 로봇 시장을 군포에 마련된 실증센터가 제대로 뒷받침하면 자연스럽게 국내 로봇업계가 군포를 주목하게 될 것이라는 게 산업진흥원이 노리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유망한 로봇 기업들을 지역에 유치해 오랜 기간 개선의 동력을 찾기 힘들었던 지역 산업 전반에 혁신 요인을 만드는 것 역시 또 다른 궁극적인 목표다.

국내 최대 로봇 전시회인 ‘로보월드’가 지난해 10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가운데,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 구축을 준비 중인 군포산업진흥원 등 참여기관 관계자들이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헥사휴먼케어 부스를 찾았다. /군포산업진흥원 제공
국내 최대 로봇 전시회인 ‘로보월드’가 지난해 10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가운데,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 구축을 준비 중인 군포산업진흥원 등 참여기관 관계자들이 웨어러블 로봇 전문기업 헥사휴먼케어 부스를 찾았다. /군포산업진흥원 제공

사업 총괄 주관기관인 산업진흥원 측은 “산업 혁신 기반 구축 사업 기간은 5년이다. 그 기간엔 정부 지원이 수반되지만 이후 실증센터가 존속하려면 기반을 탄탄히 갖춰야 한다. 사업 기간인 5년은 우리의 독자적 역량을 키워나가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컨소시엄을 이룬 기관들과 어떻게 협력해나갈지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려고 한다”며 “기초단체에서 이런 사업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사례 자체가 매우 드물다. 우리 시가 재정이 탄탄하거나 자원이 많은 곳은 아니기 때문에 발전의 동력을 만들려면 더 힘들다. 과감한 결단과 의지가 반드시 필요한데, 시장님 의지가 주효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려운 와중에도 계속 추진하고 있는 건 이런 실증 인프라를 잘 구축하는 게 관련 산업 전반의 성장을 견인하고, 동시에 우리 지역의 발전으로도 이어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중심 인프라가 있는 곳이 그 산업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높다. 군포뿐 아니라 인근 지역까지 포함해 웨어러블 로봇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다”며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웨어러블 로봇 산업과 관련해 대한민국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려고 한다. 대한민국 웨어러블 로봇 산업하면 군포시가 연상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게 저희 목표”라고 강조했다.

■ [인터뷰] 하은호 군포시장 “첨단기업 유치 온힘… 협업체계 구축할 것”

“군포시를 로봇산업의 메카로 성장시키겠습니다.”

하은호(사진) 군포시장은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역설한다. 그러려면 도시가 스스로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 오랜기간 발전이 정체된 군포시가 지속가능하려면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일으켜야 한다는 게 하 시장의 진단이다.

하 시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게 우리 시로선 매우 큰 과제 중 하나다. 이를 위해 기업 유치에 계속 힘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를 우리 지역에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은 첨단 기업들이 군포시를 주목하게 하는 큰 요인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실증센터가 안착하면 기업들이 수년 내로 올 수 있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강소기업들, 그 중에서도 유니콘 기업이 될 만한 역량을 갖춘 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를 성공적으로 조성하고 기업들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민간 기업들과의 협업 체계를 탄탄히 구축하는 한편 정부·경기도 단위의 지원 방안도 꾸준히 모색하겠다는 게 하 시장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방면으로 조언을 구하고 있다고 했다.

하 시장은 “웨어러블 로봇 실증센터가 구축되면 민간 기업 등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또 센터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 향후 운영 문제 등을 경기도 등과도 협의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군포/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