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농촌풍경 여전히 생생… 날 넘어서 명맥 이어주길”
1978년 4H 중 지역 농악과 연 맺어
1대 故 윤덕현 옹 인준으로 전수자
2016년 시도무형유산 23호 ‘2대’로
조문연(67) 선생은 김포 오천년 들녘의 혼이 서린 ‘통진두레놀이’에 일생 봉사하는 마음으로 투신해 보유자까지 오른 인물이다. 17대조부터 통진지역에 터 잡은 집안에서 나고 자란 선생은 김포의 대표 유산을 지키면서 황혼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통진두레놀이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난 선생은 “난 농사꾼이다. 선대부터 내려온 작물을 하나도 포기한 게 없다”며 “기계화로 많이 바뀌었다고는 해도 소 쟁기질할 때부터 농사를 배워서인지 옛 농촌풍경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두레는 모내기·김매기처럼 단기간 노동력을 집중해야 하는 농번기에 일손을 모은 협력문화였다. 이 시기 마을마다 천수답에 물을 대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는데, 그 과정에서 번성한 횃(불)싸움 등 오락거리와 논농사의 모든 과정을 예술작품으로 승화한 게 통진두레놀이다.
조 선생은 1978년 4H 생활을 하던 중에 통진두레놀이의 전신이라 할 지역 농악과 연을 맺었다. 그는 4H 경연대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을 규합하는 역할을 맡았다. 통진두레놀이는 1985년에 이르러 통진 주민들의 참여로 재현되기 시작했다.
선생은 “내가 ‘귀 명창’인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꽹과리 치고 북 치는 소리를 듣고는 말 그대로 어깨너머로 익혔다”고 회상했다.
통진두레놀이 열두 마당 구성에는 볍씨뿌리기, 모내기, 벼베기, 섬쌓기 등이 펼쳐진다. 1997년 전북 익산에서 열린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통진두레놀이는 대통령상을 받았다. 당시 수많은 언론이 대서특필할 만큼 김포의 큰 자랑이었고, 이듬해 경기도 무형문화재(현재 ‘시도무형유산’으로 표기)에 지정되는 경사를 맞았다.
통진두레놀이 제5대 상쇠인 조 선생은 1대 보유자 고(故) 윤덕현 옹의 인준으로 2005년 전수자(현 이수자)가 먼저 되고 2009년 전수교육조교로 승격했다. 윤 옹이 별세한 뒤 보존회를 이끌던 그는 2016년 시도무형유산(경기도) 제23호 통진두레놀이의 2대 보유자가 됐다.
보존회에는 현재 이수자 17명과 일반 회원 60~70명이 활동한다. 조 선생은 매주 목요일 연습에 함께하면서 이들을 총지휘한다.
선생은 “전에는 새마을지도자이고 부녀회고 이장이고 봉사 차원에서 두레놀이에 힘을 보탰는데 이제는 그런 걸 기대하기 힘들다. 농사짓는 청년이 드문 데다 요즘 세대는 대개 맞벌이를 하지 않냐”며 “지금 회원들도 남성은 수로나 양수시설 관리, 여성은 요양보호사 등으로 소득활동을 하는 와중에 두레놀이라 하면 열일 제쳐놓고 와주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끝으로 그는 “뜻있는 사람들이 통진두레놀이의 명맥을 이어줬으면 좋겠고, 나를 넘어서는 보유자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