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 조상의 어리석음, 유물일까 재앙일까
플라스틱 쓰레기 등 피사체 폴라로이드 촬영 환경문제 재치 있는 해석
4개 섹션 전시·배우 김혜자 오디오 도슨트… 25일 아티스트 토크 진행
기후 위기 대응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에 서명했다. 전 지구적인 온실가스 감축에 차질이 생긴 상황. 주변을 돌아봐도 갈 길은 멀고 아득하다. 쓸모를 잃은 각종 의류와 일회용품이 제3세계로 흘러가 거대한 쓰레기 산을 만들고 있다. 마치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는 현대인들. 우리가 마주할 앞날은 어떤 모습일까.
포토그래퍼 김명중(MJ KIM·52·사진)은 섬뜩한 미래를 떠올렸다. 우리의 후손이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를 유물로 발굴하는, 22세기 디스토피아. 땅 아래 깊숙이 묻힌 것은 청자나 장신구가 아닌 조상들의 어리석음이다. 그는 플라스틱 생수병, 고장난 헤드셋 등을 피사체로 삼아 이를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사진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22세기 유물 93호: 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출토 헤드셋’.
수원시립미술관 수원시립만석전시관의 ‘22세기 유물전’에서는 환경 문제를 비틀어 재치 있게 해석한 김명중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22세기 후손들은 우리가 버린 쓰레기를 발굴해 유물로 여기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환경 오염을 포착한 풍경 사진 5점, 유물로 표현한 정물 사진 19점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한 공간에 펼쳐낸다. 배우 김혜자의 목소리로 듣는 오디오 도슨트도 더해져 작품에 담긴 이야기를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다.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는 현재와 미래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첫 번째 섹션에서는 김명중 작가가 봉사 활동 중 촬영한 현재의 환경 오염 현장을 담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쓰레기로 뒤덮인 산과 그 아래서 커다란 자루를 들고 이곳을 배회하는 어린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오늘날을 대변한다.
두 번째 섹션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일회용품을 미래 유물로 탈바꿈시킨 작품들로 공간을 채운다. 벽에 걸린 사진 아래는 흙 묻은 피사체의 실물을 함께 배치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공간은 각각 아카이브 도서 탐색과 관람객이 참여하는 연계 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 환경 관련 도서와 작가 인터뷰를 살펴볼 수 있으며, 직접 업사이클링 작품 등을 만들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새로운 형태의 정물 사진을 선보인 김명중 작가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포토그래퍼다. 특히 그는 비틀스 멤버 폴 매카트니의 전속 사진가로 널리 알려졌다. 그간 인물 사진을 통해 피사체의 내면과 외면 모두를 작품에 담아냈다. 이번 정물 사진에서는 환경 문제와 지속 가능성을 예술적인 메시지로 풀어냈다. 산책 중 우연히 땅에 반쯤 묻힌 콜라병을 보고 떠오른 문제의식이 ‘22세기 유물’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한다.
김명중 작가는 “필름의 오래된 듯한 색감과 점점 이미지가 사라지는 특성이 마음에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필름 촬영을 하면서 저 또한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이중적인 느낌을 받았다”며 “어떤 문제에 대해 맞고 틀림을 강요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관람객들이 사진을 보면서 각자 판단하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오는 25일 오후 2시 전시실에서는 김명중 작가가 참여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진행된다. 작업 방식과 작품 의도 등 예술 세계를 이야기하며 관람객과 소통할 예정이다. 전시는 다음 달 7일까지.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