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겨울에도 동백은 작별하지 않는다

 

강인한 생명력… 꽃송이째 뚝 떨어져

순결·그리움 꽃말, 4·3 희생자 추모 상징

토종·애기동백, 11월~2월초까지 만개

중산간 ‘4·3평화공원’ 초봄도 구경 가능

지금 제주는 ‘동백꽃 필 무렵’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피어난 동백꽃은 붉고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며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한 잎씩 지는 벚꽃과 다르게 동백꽃은 나무에서 한 번, 땅으로 떨어져 한 번. 두 번 피는 꽃으로 불린다.

붉은색이 가장 아름다울 때 떨어지는데, 꽃봉오리째 떨어져 그 아래마저 레드카펫을 깔아놓은 듯 붉은 물결을 이룬다.

도민들은 예로부터 제주의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동백나무를 심어 방풍림을 조성해왔다. 또 동백 열매로 기름을 짜 불을 밝히고, 잔치음식과 민간요법 용도로도 활용했다. 제주에서 언제 어디에서나 동백나무를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이유다.

동백(Camellia)은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꽃말을 갖고 있지만, 순결과 그리움, 절조란 꽃말도 지니고 있다. 특히 제주에서 동백꽃은 4·3의 아픔을 간직한 추모의 상징으로 꼽힌다. 꽃송이째 뚝 떨어지는 모습이 억울하게 희생된 4·3 희생자와 닮아서라고 한다. 이 때문에 4·3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배지 모양도 동백꽃이다.

동백꽃은 진분홍 애기동백과 새빨간 토종 동백이 개화 시기를 달리하며 제주 겨울을 붉게 물들인다. 11월 중순부터 1월까지 제주를 밝히는 동백꽃은 애기동백이고, 토종 동백은 1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해 1월 말에서 2월 초쯤 만개한다. 지금 내가 제주에 있거나, 갈 예정이라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붉은 동백꽃 명소를 방문하길 추천한다.

한라산의 설경과 동백꽃. /클립아트코리아
한라산의 설경과 동백꽃. /클립아트코리아

■ 제주 최고 동백 스폿은

신흥2리 ‘제주동백마을’ 300년 역사 자랑

주민 직접 숲탐방·체험 프로그램 운영

제주에서 동백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단연 서귀포시 남원읍이다. 남원읍에 있는 신흥2리는 토종 동백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겨울이면 마을길이 붉게 물든다. 골목골목 피어난 동백꽃의 화사함과 마을의 한적한 분위기가 어우러져 낭만 가득한 겨울여행을 선사한다.

신흥2리는 300년이 넘은 신흥동백나무군락(제주도기념물 제27호)을 품은 마을이다. 1706년 광산김씨 일가가 정착해 당시 방풍림으로 동백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신흥2리는 ‘제주동백마을’로도 불리는데, 2007년 마을이 생긴 지 300년 된 것을 기념해 주민들이 토종 동백나무 300그루를 직접 심고 가꾼 것이 시작이 됐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직접 동백을 가꾸며 다채로운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동백 열매를 활용한 소품과 함께 클레이로 동백꽃을 만들어 보는 ‘동백 공예체험’, 생동백오일과 천연재료(진피·녹차·백년초)를 피부 타입에 맞게 첨가해 천연비누를 만드는 ‘동백 비누체험’, 식용 동백기름을 이용해 동백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동백 음식체험’ 등이 진행되고 있다.

마을의 상징인 동백군락지를 둘러볼 수 있는 ‘동백숲탐방’ 프로그램 운영과 함께 동백꽃수와 동백오일, 천연 에센셜 오일 등을 이용해 나만의 화장품을 만들어 보는 ‘동백 스킨 만들기’, 다른 오일과 천연 에센셜 오일을 블렌딩해 멀티 오일을 만드는 ‘동백 멀티오일 만들기’ 등을 통해 제주여행 속 낭만적인 추억도 남길 수 있다.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카멜리아힐 제공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카멜리아힐 제공

안덕면 ‘카멜리아힐’ 동양 최대 동백수목원

20만㎡ 부지 80개국 500여품종 펼쳐져

서귀포시 안덕면에 있는 카멜리아힐도 제주의 대표적인 동백 명소다. 동양에서 가장 큰 동백 수목원인 이곳은 19만8천여㎡의 넓은 부지에서 토종 동백부터 애기동백, 유럽 동백 등 80여 개국 500여 품종의 수많은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가장 큰 동백꽃부터 가장 일찍 피는 동백꽃까지, 하얀색부터 빨간색까지 형형색색의 동백꽃들을 눈에 담을 수 있다. 특히 전 세계에 6종밖에 없는 향기를 내는 동백 품종도 모두 감상할 수 있다.

카멜리아힐 안에는 아기자기한 포토 스폿이 많아 커플과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동백꽃이 피는 계절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동백꽃을 배경으로 멋진 인생숏을 남기기 위해 찾아드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곳곳에 걸린 센스 넘치는 가렌더는 붉은 물결에 감성을 한껏 더한다.

카멜리아힐을 한 바퀴 둘러보는 데는 대략 40분에서 1시간20분 정도 소요된다. 사진으로 추억을 남길 예정이면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어 관람시간을 넉넉히 잡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카멜리아힐 제공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카멜리아힐 제공

위미리 道기념물 39호 ‘동백나무군락지’

숲 일궈낸 현맹춘 할머니 정성 깃들어

남원읍 위미리에는 제주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군락이 있다. 이 동백나무 숲은 황무지를 옥토로 가꾸기 위해 끈질긴 집념과 피땀 어린 정성을 쏟은 한 할머니의 얼이 깃든 유서 깊은 곳이다.

17세가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온 현맹춘 할머니(1858~1933)가 해초 캐기와 품팔이 등 근면·검소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이곳 황무지를 사들인 뒤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 이곳에 뿌린 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기름진 땅과 울창한 숲을 이뤘다.

동백나무가 솜사탕처럼 봉긋하게 조경돼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사진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현재 동백나무 500여 그루가 조성돼 있고, 가장 큰 나무는 둘레 1.4m에 높이는 10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에 위치한 제주동백수목원의 애기동백나무숲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사유지였던 공간이 아름다움으로 입소문을 타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자 관광지로 공개된 곳이다.

이곳은 사철 푸른 동백과 철 따라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 풍요로움이 가득한 감귤원과 함께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동백꽃은 물론, 한 그루 한 그루를 마치 꽃다발처럼 둥그렇게 가꾼 동백나무도 아름다워 포토 스폿으로 유명세를 띠고 있다. 이들 나무 가운데 서 있으면 마치 동화나 회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제주관광공사 제공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제주관광공사 제공

동백수목원 근처에 있는 동박낭 카페도 유명한 동백꽃 스폿이다. 제주의 돌담과 동백나무가 서 있는 아기자기한 입구가 반겨주는 곳으로, 입장료를 지불하면 안에 마련된 머신에서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다. 카페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동백꽃 뷰다. 가장 위에 있는 테라스에 올라서면 드넓은 동백나무숲을 조망할 수 있다.

건물 밖 야외정원에도 곳곳에 동백나무와 쉼터가 마련돼 있어 나무 아래에서 운치 있게 꽃을 감상할 수도 있다. 포토존으로 이름난 곳은 동백꽃 벽화가 그려진 벽이다. 여기서 사진을 찍으면 실물 동백과 그림 동백을 두루 담을 수 있다.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동백포레스트도 동글동글한 애기동백나무가 심어져 있는 동백 군락지다. 화려하게 피어난 동백꽃과 군락지를 둘러싼 돌담, 그리고 나무 주변에 의자가 설치돼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동백나무 주위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동백군락지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제주4·3평화공원도 동백꽃 명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곳에는 4·3 유족과 도민이 기증한 것을 포함해 500여 그루가 넘는 동백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4·3평화공원은 고도가 높은 중산간에 자리 잡고 있어 초봄까지도 동백꽃을 만날 수 있다. 제주4·3희생자추념식 당일 방문하면 동백과 함께 흩날리는 벚꽃도 볼 수 있다.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제주관광공사 제공
진분홍색의 동백꽃이 활짝 피어 제주 겨울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카멜리아힐, 동백포레스트, 동백수목원 등 제주 곳곳 만개한 동백꽃. /제주관광공사 제공

■ 탄소 먹는 효자 노릇 ‘톡톡’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동백나무숲 1㏊(50년생 기준)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연간 7.32t으로, 중형자동차 3대가 1년간 내뿜는 이산화탄소 양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난대수종 분포지역이 내륙으로 확대됨에 따라 국립산림과학원이 난대수종 중 많은 분포를 가진 동백나무가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흡수하는지 알아내기 위한 연구의 결과다.

우리나라 동백나무숲 규모가 국제 규격 축구장 982개 크기임을 고려하면 총 4천868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방문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기르면 꽃도 보고 지구도 살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누릴 수 있다.

특히 한겨울에도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는 제주에서는 더 잘 자랄 수 있는 만큼 집 뜰이나 베란다, 집 안 창가 등 어느 곳에서도 까다롭지 않게 들일 수 있다.

/제주일보=진유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