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天地人) 본딴 건물들의 합주… 웅장함에 반하다
빛을 깎고 건축을 빚는 명장 ‘안도 타다오’ 작품
700m 길이로… 공간·예술·자연 조화롭게 제작
Box in Box 콘셉트… 사각·삼각·원형 어우러져
관람객에 ‘살아갈 힘’ 되찾도록 돕는 글로벌 명소
페이퍼갤러리 시작점 ‘파피루스 온실’ 대표적 중정
4가지 특색있는 정원 꾸려 은밀한 재미·감동 선사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이 조화를 이루는 곳, 뮤지엄 산(SAN)이다.
뮤지엄 산은 자연 속에서 편안하게 휴식하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국내 최초, 최대 규모 전원형 뮤지엄이다. 산(SAN)이라는 이름은 공간, 예술, 자연의 영문 첫 글자를 딴 것이기도 하다. 건축과 예술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진 장소를 의미한다.
자작나무 길을 지나는 산바람의 운율, 생명력과 평안함으로 일렁이는 물과 반짝이는 돌, 노출콘크리트가 만들어내는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 종이 공예품의 아날로그적 감성,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아시아 최대 규모 작품이 더해져 2013년 5월 원주시 지정면에 문을 열었다.
2005년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는 부지를 방문한 뒤 ‘도시의 번잡함으로부터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상은 지금의 개성 강한 건축물을 탄생시켰다. 전체 길이가 700m에 이르며 산 정상 특유의 뛰어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환경 일체형 건축물이 부지를 가득 채우는 형태다. 미술관 본체는 기러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인 안행형 배치를 기본으로 4개의 동으로 구성됐다. 각 동 사이에는 완충 영역으로 안도 타다오의 조형 지향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공간이 위치한다.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것을 비롯 한국 메세나대상 문화공헌상을 수상했고 영국경제신문 Financial Times로부터 ‘어디에도 없는 꿈의 뮤지엄’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싱가포르 The Artling은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아시아의 뮤지엄’으로 꼽았고 미국공영방송 PBS의 Joseph Rosendo’s Travelscope에 소개되는 등 글로벌 명소로 자리 잡았다.
너른 부지에 세워진 자연과 조화롭게 합일을 이루는 나지막한 건물.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곳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공간(Space)
=한국의 조약돌, 자갈, 모래로 만든 회색 노출콘크리트와 따스한 빛깔의 파주석(자연석)의 조화로 만들어진 건물은 단단한 신념과 부드러운 포용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자연스럽게 동선이 이어져 여유롭게 산책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축 시 자연 훼손을 최소화해 산세를 그대로 유지, 마치 뮤지엄을 들어서 옮겨 놓은 것 같은 풍경이 인상적이다.
본관은 4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돼 대지와 하늘을,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했던 건축가의 철학을 담았다. 시시각각 바뀌는 자연 빛과 한국 고유의 색감을 품은 자연석, 깨끗하고 투명한 물로 에워싸여 동양적인 명상세계를 추구한다. 본관 내부 역시 파주석 박스 안에 노출 콘크리트 박스가 놓인 Box in Box 콘셉트로 사각형, 삼각형, 원형의 무의 공간이 갤러리들을 잇는다.
뮤지엄 산 3대 중정 중 하나인 ‘파피루스 온실’은 종이의 어원이 되는 서사재료로 페이퍼갤러리의 시작을 알린다. 건축적으로는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사각형 공간이자 안도 타다오의 대표 건축물 중 하나인 스미요시 주택에서 볼 수 있는 중정의 개념이 도입된, 실내에서 마주하게 되는 실외 공간이다. 빛, 바람, 눈, 비 등 계절이 전해주는 시간의 변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백남준관’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미디어 작품을 볼 수 있는 특별 전시관이다. 하늘을 상징하는 9m 높이의 원형 전시관은 천장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건축에 끌어들인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평가받는다. 건축의 웅장함과 물 위에 떠 있는 듯 위치한 백남준 작품의 생동감이 어우러져 경건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삼각코트’는 건축가에 의해 기획된 무(無)의 공간이자 사람을 상징해 사각형의 대지와 원형의 하늘을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의 삼각형 공간 안에서 올려다보는 하늘과 함께 힐링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예술(Art)
=뮤지엄 산은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맥을 잇는 ‘페이퍼 갤러리’, 회화, 판화, 드로잉 작품을 갖춘 ‘청조갤러리’, 자연과 인공 빛의 향연이 펼쳐지는 ‘제임스 터렐관’을 중심으로 종이와 미술의 상징적 접점을 만든다. 판화공방과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복합문화예술 공간이기도 하다.
페이퍼 갤러리는 우리 종이의 문화적 가치에 초점을 맞춰 연구 및 소개 작업을 추진해 온 한국 최초의 종이전문 박물관이다. 국보,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10점을 소장하고 있다. 청조갤러리는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며 제임스 터렐관에서는 빛과 공간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대표작품 5개를 볼 수 있다.
돔 형태의 명상관은 빛의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뮤지엄 산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완성했다. 스톤가든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됐고 유리창을 통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풍경을 담아냈다. 이어 2023년 안도 타다오는 작품 ‘청춘’ 전시를 계기로 뮤지엄의 두 번째 명상 장소인 ‘빛의 공간’을 조각정원에 구상했다. 내부에서 시선을 위로 향하면 선명한 십자 모양의 빛이 내부를 압도하는 과정이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플라톤 입체를 모티브로 빛의 대칭성을 강조한, 긴장감 있는 공간으로 미니멀하지만 그곳으로 끌어들이는 자연의 빛이 각각의 기하학과 공진해 다른 세계를 창출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자연(Nature)
=뮤지엄 산에서는 산 정상에 세워진 향긋한 패랭이 꽃내음, 높고 푸른 하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우연히 숨겨진 비밀을 발견한 것 같은 은밀한 재미와 감동의 순간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4개의 야외정원은 사계절 어느 때에 방문해도 아름답고 근사한 정경을 뽐낸다. 붉은 패랭이꽃이 그림 같은 장관을 이루는 봄과 여름, 워터가든 위로 단풍이 고고히 떨어지는, 예술적 정경을 볼 수 있는 가을, 겨울은 하얀 눈이 덮여 스산한 매력의 고성을 연상케 한다. 순수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80만주의 붉은 패랭이 꽃과 180그루의 하얀 자작나무 길이 있는 플라워가든을 지나면 워터가든이 펼쳐진다. 뮤지엄 산의 대표 이미지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이다. 뮤지엄 본관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고요하고 눈부신 물의 정원이 신비한 느낌을 더한다. 물속의 해미석과 관람객을 맞이하는 아치형 입구는 강렬한 이미지로 워터가든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도 이색적이다. 돌무덤 형태의 스톤마운드 9개가 조각 작품과 어우러져 부드러운 곡선의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특히 해당 지역에서 나는 건축자재를 선호하는 안도 타다오는 뮤지엄이 위치한 원주에서 난 귀래석으로 스톤가든을 꾸몄다.
조각정원에서는 영산홍 군락 너머로 조엘 샤피로 등 세계 유명 작가의 조각작품들이 배치돼 자연, 예술작품, 관람객이 서로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안도 타다오는 뮤지엄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처음 부지를 보았을 때 가늘고 길게 이어진 산 정상을 깎은 듯한, 아주 보기 드문 땅이었기에 여기에 주위와는 동떨어진 별천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건물 본체뿐만 아니라 부지 전체를 뮤지엄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여기에 와서 하루를 보내면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성이 풍부해져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말이다”.
/강원일보=김설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