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많이 달라졌다
정조대왕이 3년에 걸쳐 축성한 수원 화성
군사적 방어 시설·상업적 기능 함께 보유
최근 행궁동엔 개성 넘치는 카페들 즐비
‘…우영우’ ‘선재…’ 등 드라마 배경 인기
가을엔 문화제·미디어아트 축제도 추천
절기상 입춘(立春·3일)이 지났다. 아직 공기는 차갑지만 마음은 벌써부터 설렌다.
원도심에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카페, 맛집과 곳곳에 위치한 K-드라마 성지, 그리고 성곽·행궁 문화유적지가 어우러진 수원 화성·행궁동 일대의 당일치기 여행을 추천한다.
낭만을 자아내는 야경과 골목별 타임머신 여행도 떠나보고 가을엔 문화제·미디어아트 축제도 즐겨보자.
■ 뉴트로의 대명사
‘뉴트로’(Newtro)는 복고(Retro)를 새롭게(New) 즐긴다는 뜻의 신조어다. 이에 가장 부합하는 장소가 일명 ‘행리단길’로 불리는 수원 화성·행궁동 일대다.
조선왕조 제22대 정조대왕이 3년에 걸쳐 축성한 수원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동서양 축성술이 집약돼 역사적·건축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팔달문, 화서문, 장안문, 서북공심돈, 방화수류정 등이 있으며 임금 행차 시 거처하던 임시 궁궐인 ‘화성행궁’도 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나아가 이 일대가 요즘 더욱 주목받게 된 것은 ‘행궁동 카페거리’ 덕분이다. 카페거리에는 젊은 층의 관심을 끌만한 개성 넘치는 힙한 카페들이 즐비하다.
또 원도심이어서 그동안 낙후된 이미지가 많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화성을 배경으로 구옥들이 MZ세대의 취향을 저격하는 신상 맛집, 소품숍, 공방, 캐리커처숍 등으로 탈바꿈하며 말 그대로 ‘확’ 떴다. 골목 사이사이 숨어있는 아기자기한 소품숍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고 즉석 사진관은 두세 집 건너 있을 정도로 인기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문화재 주변에 고층건물이 들어서지 못하는 특성상 성곽 안쪽에 낮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모여 독특한 풍경을 자아낸다.
성벽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를 가볍게 걸으며 고즈넉한 원도심 풍경을 즐길 수도 있다. 특히 노을과 야경을 감상하기 좋다. 화성의 북쪽 수문인 화홍문 옆 호수 ‘용연’은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피크닉객들로 가득 찬다. 연인, 친구, 가족끼리 돗자리를 깔거나 캠핑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음식을 나누며 여유를 즐긴다.
언덕 위 방화수류정에 오르면 탁 트인 풍경과 남문시장까지 쭉 이어진 수원천이 한 눈에 보인다. 가을엔 서북각루를 중심으로 성인 키를 넘는 억새가 장관이고, 겨울엔 눈이 소복이 쌓인 행궁이 운치있다.
■ 드라마의 성지 ‘K-드라마 길’
화성·행궁동 일대는 떠오르는 K-드라마 성지이기도 하다. 2021년작 ‘그 해 우리는’에서 주인공의 집으로 사용된 카페가 주목받았다. 지금은 카페가 문을 닫았으나 길에서 벽면에 그려진 일러스트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022년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 김밥’의 장소로 나왔던 한 식당은 아직도 인증숏을 찍기 위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화제가 된 작품은 지난해 4~5월에 방영된 ‘선재 업고 튀어’다. 이 드라마의 주된 배경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드라마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일명 ‘선재순례’ 코스가 생기고 수원을 찾는 해외 팬도 부쩍 늘었다. 주인공들의 고교시절 대부분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마주보고 있는 집 대문은 평일에도 북적거릴 정도다. 동아시아권은 물론이고 히잡을 쓰고 인증숏을 찍는 외국인 팬이 심심찮게 목격된다.
행궁동 벽화마을을 걷다보면 어느새 작품 속에 빠져든다. 극 중 배우들이 자전거를 탔던 용연을 둘러보고 고백 장소였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을 배경으로 한 수원천 다리에서 드라마의 한 장면을 재현할 수도 있다.
이에 발맞춰 수원문화재단은 ‘행궁동 왕의 골목’ 프로그램에 지난해부터 ‘K-드라마 길’을 추가했다. 행궁동 왕의 골목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동네 곳곳을 거니는 스토리텔링 산책 프로그램으로 총 4개의 코스 중 선택할 수 있다. 각 코스는 저마다의 매력으로 발길을 붙잡는다.
1코스 ‘행궁동 사람길’은 사람 내음이 물씬 풍기는 코스로 생태교통마을, 수원전통문화관, 행리단길 등을 둘러본다. 2코스 ‘순례길 한바퀴’는 삶을 되돌아보며 걷는 여정이다. 북수동성당, 팔부자 문구거리, 방화수류정, 무형유산전수회관 등을 탐방한다.
3코스 ‘사통팔달의 길’은 사람과 사람이 통하는 길로 수원사, 왕이 만든 시장(남문시장), 공방거리 등을 돌아본다. 4코스 ‘K-드라마 길’에서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선재 업고 튀어’, ‘법대로 사랑하라’, ‘그 해 우리는’, ‘이태원 클라쓰’ 등 드라마 촬영지를 따라 걸으며 1시간 동안 작품 관련 일화를 듣고 인증숏 촬영도 할 수 있다.
■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축제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올해의 관광지’에 선정된 화성·행궁동은 화성행궁 복원과 수원화성문화제 등 축제, 그리고 드라마 촬영지·행궁동 골목 등 문화유산과 개성 있는 로컬 문화가 잘 어우러진 관광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수원 3대 가을축제’가 이 일대에서 열리는데 이 중 수원화성문화제가 지난해 문체부 선정 ‘대한민국 대표 글로벌 축제’에 이름을 올리는 등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매년 10월 초 수원화성문화제에서는 정조대왕의 효심과 애민 정신을 담은 다채로운 공연과 체험행사가 펼쳐진다. 특히 행궁광장과 화성 일대에서는 글로벌 프로그램과 시민 참여 이벤트가 진행된다. 정조의 을묘원행 중 수원에서의 5일간 기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적 콘텐츠는 물론 화성의 축성과 도시개혁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문화관광축제다.
더불어 정조가 을묘년(1795)에 진행한 8일간의 대규모 행차를 ‘원행을묘정리의궤’에 기반해 재현한 국내 최대 왕실 퍼레이드 ‘정조대왕 능행차’도 큰 인기다. 서울 창덕궁부터 수원 화성을 거쳐 화성 융릉까지 이어지는 웅장한 행렬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성벽과 공중에 빛을 쏴 연출하는 수원화성 미디어아트쇼도 이색 볼거리다. 정조가 화성에서 꿈꿨던 여민동락의 세상을 다채로운 ‘빛’으로 표현하면서 성곽 일대는 20여 일간 형형색색으로 물들고 다양한 관련 전시회 등도 진행된다. 축제에 맞춰 이곳을 방문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다.
/양형종기자 yang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