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사회적 공론화’ 제언

 

‘승자 표현 방식으로 인식’ 문제점

무분별 SNS 사용 등 시급성 주장

정보·표현, 고민·토론 기회도 부재

규제 도입 논의·플랫폼 자정 노력도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SNS 사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클립아트코리아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SNS 사용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클립아트코리아

청소년들이 욕설과 비방 등이 난무한 음원을 만들어 일종의 ‘놀이’처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 공유하는 행위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나 사회적 약자 등에 대한 비하를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고, 나아가 ‘승자의 표현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청소년들의 무분별한 SNS 사용 등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 약자 비하가 ‘승자의 표현’으로… 어긋난 가치관이 만든 혐오 음원

최근 인천 10대 청소년들이 제작한 음원의 가사를 보면 특정 집단이나 인물에 대한 욕설이나 혐오 표현 등이 노골적으로 쓰였다. 미성년자인 여성 아이돌을 거론하며 성적 행위를 묘사한 가사도 있다. 형법 제311조에 규정된 모욕죄 성립 요건에 해당할 수 있는 내용이다. 모욕죄 성립 요건은 ▲모욕적인 언행이 불특정·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뤄지거나 ▲모욕적인 언어나 표현을 사용해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고 ▲모욕적인 언행이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훼손시킬 수 있는 내용 등이다.

미성년자들이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 특정 대상에 대한 비하, 욕설 표현 등을 담아 제작한 음원이 SNS를 거쳐 대형 음원 사이트까지 확산한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혐오 표현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곽금주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국내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하다 보니 SNS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라며 “혐오 표현을 일방적으로 접하면서 형성된 잘못된 가치관이 음악 가사로 배출된 사례”라고 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힙합 등 음악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라’는 메시지가 나오는 걸 자주 볼 수 있다”며 “이를 접한 청소년들이 약자에 대한 비하, 혐오를 마치 경쟁에서 승리한 행위로 잘못 인식한 결과가 이런 사례로 나타났다고 본다”고 했다.

■ “혐오 표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교육 의무화해야”

혐오·비하 표현을 청소년들이 잘못 받아들인 원인으로 ‘교육 부재’를 꼽는 시각도 있다. 유년기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하는 정보와 표현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할 기회가 없다는 지적이다. 현재는 교사 재량으로 디지털 윤리 등을 다루는 교육이 있지만 청소년의 건전한 SNS 사용을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 정규 교육과정에 미디어 리터러시 관련 내용을 편성해 약자에 대한 혐오 표현, 비하 발언 등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기회가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그 감정을 느꼈을 때 어떤 행동을 하고 싶은지 등을 고민하고 판단할 기회가 어렸을 때부터 주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시민사회단체 중심으로 이루어진 리터러시 교육을 제도권으로 편입해 의무화해야 한다”고 했다.

■ SNS 사용 제한·혐오 표현 수익 창출 금지 등 대안도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SNS 사용 제한이나 혐오 표현을 담은 음원을 걸러내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창작이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혐오·비하와 관련된 내용을 제재하기 위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하재근 평론가는 “청소년의 SNS 사용을 두고 우리 공동체가 깊이 있게 논의해 왔는지 의문”이라며 “해외 국가에서는 사용 연령을 제한하는 식의 규제가 하나둘 나오는데, 이런 규제가 소기의 효과를 거뒀는지 관찰하며 도입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형 음원 사이트들이 자체적으로 혐오·비하 내용이 포함된 음원을 제재하기 위한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를 들면 음원 내용이 유해하다고 판단될 경우 이용자가 음원을 듣거나 내려받아도 수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다. 김성수 평론가는 “혐오·비하 내용을 판단하는 기준은 완벽하게 객관적일 수 없다. 정부가 혐오·비하 내용을 규정해 제재를 가하면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음원 플랫폼의 자율 규제가 작동해야 하는데, 혐오 음원이나 콘텐츠를 만들면 수익을 낼 수 없게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정부는 이를 독려하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