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만들어 나눠 쓰는데, 왜 요금까지 더 내라하나?
전력 생산 많은 곳, 적은 요금으로 신산업
적은 곳엔 신재생에너지 유도 당초 취지
수도권·비수도권으로만 구별 적용할땐
수도권으로 묶이는 인천, 되레 부담 늘어
지역별 전기요금제 시행 근거를 담은 분산에너지법이 시행되면서 인천·경기도 등 수도권 지역의 전기요금이 지금보다 오를 전망이다.
분산에너지법은 장거리 송전망에 바탕한 중앙집중형 전력체계에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보완하고 수요지 인근에서 전력을 생산해 소비가 가능한 ‘지산지소’(地産地消‘)형 분산에너지 시스템 구축을 촉진하기 위해 2023년 6월 제정됐다.
각 지역의 전력자급률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지는 제도로, 수도권에 몰려 있는 전력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도입됐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전력수요 및 사용량이 많은 수도권은 높은 요금제, 발전소가 많은 비수도권은 낮은 요금제가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인천은 발전소가 많아 전력자급률이 높음에도 ‘수도권’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요금제가 적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전력자급률 195% 인천 정부안 차등요금제에 ‘역차별’ 우려
정부의 차등요금제 도입 관련 인천 지역사회의 우려가 큰 이유는 당초 예상과 달리 전기요금을 기존보다 더 많이 내야 할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인천은 분산에너지법 시행으로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 상황에 맞춰 전기요금이 낮아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최근 정부가 지역의 전력생산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수도권·비수도권·제주도로 나눠 요금을 책정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정부가 계획한 차등요금제 설계안은 전력소비량만큼 충분한 전기를 만들지 못하는 지역은 신재생에너지·연료전지 등 분산에너지를 통한 에너지 생산을 유도하고,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저렴한 전기요금으로 신산업 유치가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천은 이미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서울·경기와 수도권이라는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동일한 전기요금을 적용한다는 점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게 인천 지역의 여론이다.
한국전력공사의 전력통계월보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행정구역별 전기 발전량은 인천이 4만6천359GWh(기가와트시)로 7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많았다. 전력소비량 대비 생산량을 나타내는 전력자급률은 195%이다. 전력자급률이 100%를 초과한다는 것은 소비량보다 생산량이 많다는 의미다. 반면 서울과 경기 전력자급률은 각각 11.29%, 61.22%로 낮아 다른 지역에서 전력을 공급받는 실정이다. 전력자급률이 낮은 수도권 다른 지역과 인천을 하나의 권역으로 차등요금제를 도입하게 되면 지역 전기요금은 현재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충분한 전기 생산지역 특수성 미반영
주민건강·자연훼손 피해 떠안은 인천
요금 상승땐 기업유치 경쟁력도 약화
‘분산에너지법’ 개정안 등 반영 주목
■ 전기요금, 첨단산업 유치 등 경쟁력 좌우
인천과 같이 지역에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는 곳은 지역 특수성을 반영해 차등요금제를 도입하는 정책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지역사회 요구다. 지역별 전력자급률을 고려하지 않은 권역별 차등요금제를 일괄 적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분산에너지법 취지에 맞춰 전기를 만드는 곳에서 전기를 소비하는 전력시스템이 원활하게 운영되도록 충분한 인센티브가 제공돼야 한다는 의미다.
인천은 유연탄을 에너지원으로 한 영흥석탄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로 전력생산 효율이 높지만, 온실가스 등 대규모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따른 환경피해와 주민 건강상 문제, 경관·자연 훼손 등 여러 피해를 떠안고 있다. 이미 여러 문제를 감수하고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데 정부가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불합리한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면 인천이 떠안아야 할 피해는 한층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차등요금제는 산업 경쟁력과 맞닿은 사안이라는 점에서 지역의 지속가능성과도 직결된다. 차등요금제가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기업의 비용 부담을 초래해 지역 산업 경쟁력을 저하할 수 있고, 반대로 기업 유치 시 신규 유인책으로 작용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경제계는 현재 정부안대로 차등요금제를 시행하면 수도권 제조업 전체의 연간 전력비용이 1조4천억원가량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인천은 생산 공정에서 전력수요가 높은 철강·석유화학·자동차· 반도체·바이오 등 대기업·중견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어 전기 요금 인상 시 산업계에 미칠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AI)·반도체·이차전지·양자컴퓨터·가상발전소(VPP)·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도 대규모 전력공급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지역의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인천시는 전력자급률이 높은 부산, 울산, 경북, 충남, 강원 등 지자체와 함께 협력 체계를 구축해 지역 특수성을 반영한 차등요금제 도입을 촉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도 지역별 전력자급률을 고려한 전기요금제를 적용하는 분산에너지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대응하고 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허종식 의원은 “차등요금제는 지역 내 전력수요와 공급량을 일치시키려는 목적으로 시행돼야 한다”며 “발전량 절반 가까이를 인접 지역에 공급하는 인천의 상황을 반영해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구조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허 의원은 지난해 10월 지자체 전력자급률을 바탕으로 차등요금제를 적용하는 분산에너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차등요금제 소관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인천과 같이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의 개별 특성을 고려해 충분한 검토를 거쳐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올해 차등요금제를 한전이 발전소로부터 사들이는 도매시장에 우선 도입하고 내년 한전이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소매시장에서 시행을 목표로 한다. 전력소비자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소매가격에서 차등요금제를 지역별로 적용되도록 검토하겠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차등요금제와 관련해 전력자급률이 높은 인천 지역에 피해가 없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며 “소매시장에서는 수도권, 비수도권 권역이 아닌 추가적으로 지역을 세분화해 소매가격을 적용하는 방식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