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민심, 갈길 잃은 변전소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 주요 원인
반도체 클러스터, 신설 없이 불가능
인허가 최소화·분쟁 간소화案 필요
수도권에 변전소가 잇따라 들어서고 있는 이유는 데이터센터,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반면 전력 자급률은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에서 남아도는 전력을 수도권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신규 송전망과 변전소 등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선 별다른 이견이 없는 상태다.
9일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수도권의 전체 전력 소비량은 214.8TWh로 집계됐지만 발전량은 144.4TWh로 전력자급률이 67%에 불과하다. 반면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해 있는 영남권의 발전량은 222TWh로 전력 소비량(151.2TWh)을 47%나 초과하고 있고 태양광 발전이 많은 호남권도 전력 소비량보다 발전량이 12% 많은 편이다.
특히 우후죽순 수도권에 들어서는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수도권 전력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3년 말 기준 국내 147개 데이터센터 전력수요는 1.76GW로, 이 중 60%가량의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전력 수요도 70%를 넘는다. 이런 가운데 오는 2029년까지 732개 데이터센터가 추가 신축될 예정인데 이 중 수도권에 입지를 희망하는 곳만 600여 곳(82%)에 달한다.
또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GTX·지하철 연장 시 반드시 변전소가 설치돼야 하지만 주민과 지자체, 한전 등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 제정 및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를 통해 이해관계와 갈등 등을 조정하는 방안이 최상의 안으로 지목됐다. 하지만 지난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이후 의원들이 앞다퉈 특별법안을 발의, 지난해 여야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가장 시급한 쟁점 법안으로 지목하고 조속한 처리에 합의했으나 탄핵 정국 등으로 발목이 잡혀있는 상태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 확인 결과, 여야 의원들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12건 발의했는데 길게는 8개월 넘도록 소관 상임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지난해 동해안 지역의 발전량은 17.9GW에 달하지만 수도권 송전량은 10.5GW에 머물렀다”며 “독일의 경우 전력망 확충을 국가 필수사업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내도) 인·허가 최소화와 분쟁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주민들의 반대로 변전소를 짓지 못해 전력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국책 사업이 발목을 잡힐 수가 있다”며 “국회는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조속히 제정하고 국무총리실과 국무조정실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남/문성호·김연태기자 moon2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