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생가터에 준공 예정 불구

독립유공단체·주민 여론 갈라져

市 “업적과 친일 등 공과 드러내

양측 조정·중재… 해법 도출 노력”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이 반민족행위 찬반 논란 등으로 20년째 표류하고 있다. 사진은 홍난파 선생이 태어난 옛터. 2025.2.12 화성/김학석기자 marskim@kyeongin.com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이 반민족행위 찬반 논란 등으로 20년째 표류하고 있다. 사진은 홍난파 선생이 태어난 옛터. 2025.2.12 화성/김학석기자 marskim@kyeongin.com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전 국민이 읊조리는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본명·홍영후)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고향의 봄 꽃동산 조성사업’이 20년째 답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가곡 ‘봉선화’, 동요 고향의 봄 작곡가로 알려진 홍난파는 1898년 화성시 남양읍 활초리 283번지에서 태어나 1910년 황성 기독교청년회(YMCA) 중학부에 입학해 서양음악을 접했으며 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이화여자 전문학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봉선화’,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봄처녀’, ‘금강에 살어리랏다’, ‘고향의 봄’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처녀혼’, ‘비겁한자’, ‘새벽종’ 등이 있다. 1937년 6월에 ‘수양동우회’ 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되기도 했으며 고문후유증으로 1941년 8월 늑막염이 악화돼 향년 44세로 삶을 마감했다.

화성시는 근대음악의 선구자로 자리잡은 홍난파의 음악적 업적과 역사적 사실(친일행적 포함)을 담은 자료관, 야외음악당, 공원 등을 갖춘 ‘고향의 봄 꽃동산’을 조성하기 위해 2004년 42억원을 들여 생가터인 남양읍 활초리 홍난파길 32 일원 4만5천270㎡를 매입했다. 2006년 준공할 예정이었다. 당초 생가는 멸실됐으나 1986년 12월 목조 초가 4칸의 ‘ㄱ자’형으로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홍난파 선생의 반민족행위 문제에 대한 찬반 여론이 불거지며 20년째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광복회 등 독립유공단체들은 창씨개명, 친일단체 가입, 친일가요 작곡 등을 문제삼아 친일인명사전에 등록된 인물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친일 인물에 대해 시 예산으로 선양사업을 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친일찬양의 기념관 건립이 아닌 일몰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주민들은 근대음악 선구자에 대한 공과를 함께 기록하며 예술은 예술로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큰 틀에서 근대음악 박물관 또는 미술관 등 남양발전을 위한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유지를 20년 넘게 방치하는 것은 시민혈세를 낭비하는 것으로,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활용도를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 이상의 희망고문을 끝내고 개발에 방점을 두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시 관계자는 “찬반 양측이 참여하는 갈등조정협의체에서 업적과 친일행적 등 공과를 드러내 놓고 활용방안을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며 “시유지 활용을 위한 기본계획 용역을 중단했다가 올해 다시 추진하고 있어 양측의 조정·중재를 통해 바람직한 해법을 도출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화성/김학석기자 mars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