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스틸러의 영화, 사회적 관심 환기

진짜 살아있는 박물관 조성 움직임

땅속 마을 씨앗 탐험 등 다양한 시도

다랑이논·밭, 모내기·감자캐기 체험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 알릴 것

김유호 국립농업박물관 농업본부장
김유호 국립농업박물관 농업본부장

살아 있는 박물관을 이야기하라면 숀 레비 감독, 벤 스틸러가 주연한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를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의 전시물들이 밤이면 살아서 돌아다니는 놀라운 광경으로 시작된다. 아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고자 했던 주인공 레리가 살아 움직이는 전시물 속에서 어떻게든 박물관을 지켜내려고 고군분투하는 스토리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에 두 가지의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박물관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고, 두 번째는 진짜로 살아 있는 박물관을 운영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2023년 5월 미국 시카고에서 개최한 세계 어린이 박물관협회 학술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미국의 박물관은 과거 유물을 단순 전시하는 것을 넘어, 옛것을 직접 가지고 놀면서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특히 시카고 어린이박물관에선 박물관 옥상에 동물농장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야외 체험장은 어린이 놀이터를 방불케 할 정도였다. 또 과학 기술과 엔지니어링을 체험하는 어린이 연구소부터 예술을 즐겨보는 미술 스튜디오 등 대규모 체험시설이 복합적으로 구성됐는데, 이를 보고 박물관 운영 방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립농업박물관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유일한 농업을 총괄하는 박물관이다. 농업의 중요성과 가치를 전달하고자 2022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설립한 기관이다. 설계 당시 농업전시체험관으로 하려고 했지만 여러 분야의 의견을 듣고 국립농업박물관으로 이름을 지었다.

우리 박물관도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박물관 내 어린이박물관은 땅속 마을 씨앗 탐험과 웅덩이 속의 생물 관찰 등을 미디어로 경험할 수 있고, 벼의 수확부터 도정까지의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에게는 보는 것보다 만지면서 느끼는 것이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다.

아이들을 위한 넓은 놀이터가 된 어린이박물관은 우리 박물관의 최고 인기 장소다. 박물관은 농업 관련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도시민들이 농업을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박물관 야외 다랑이논·밭은 사시사철 포근하고 정겨운 옛 농촌 풍경을 자랑한다. 논에서는 모내기, 벼 베기, 탈곡, 도정 체험 등 벼의 일대기를 배울 수 있고, 밭에서는 고구마, 감자 등 각종 작물을 시기별로 심고 캐는 체험을 제공해 농사일의 어려움과 중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지역 상생 프로그램으로 농촌체험마을과 협업해 박물관을 찾아오는 관람객에게 소개하고 마을 관광으로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르신, 다문화 가족, 장애인 등 소외 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제공으로 국립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지자체 관련기관과의 협력사업은 수도권에서 지방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설, 단오, 추석, 동지 등 시기별 문화행사는 점차 잊혀 가는 우리의 미풍양속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우리나라 중요농업문화유산은 전국 19개소가 지정됐다. 이는 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다. 우리 박물관은 농업 문화유산을 재조명해 박물관을 찾아오는 국민에게 선조들의 지혜를 공유한다. 2024년 12월 박물관 기획전 주제였던 ‘장 담그기 문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쾌거를 맞았다.

우리 박물관의 교육은 과거를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미래농업의 대표 아이콘인 수직농장은 작물을 직접 재배하면서 교육·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에선 씨앗을 파종하고, 싹이 트면 자동화된 재배실로 옮겨서 양액과 인공광으로 품질 좋은 작물을 생산한다.

박물관에선 이처럼 과거에서 미래까지 수천 년 이어져 오고 계승될 농업 문화유산을 체험과 교육을 통해 전달한다. 누군가 찾아주길 조용히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가가고 선제적으로 알리는 것이 살아 있는 박물관을 만드는 기반이다. 농업을 모르고 자라온 어린이부터 농업에 관심 있는 어른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박물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김유호 국립농업박물관 농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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