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내달 2일부터 25% 적용

미국 의존 80%… 판매량 하락세

 

가격 경쟁력 악화, 공장 이전 명분

중소형차 생산 이점에 GM도 고심

현대차 판매망 이용 협업 대안으로

트럼프 정부가 자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하면서 대미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지엠에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경인일보DB
트럼프 정부가 자국에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하면서 대미 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지엠에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경인일보DB

트럼프 정부가 자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율을 적용할 가능성을 내비치며 전체 판매량의 80% 이상을 미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지엠이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2018년 트럼프 정부 1기 당시 군산공장 폐쇄라는 아픈 기억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죠.

트럼프 정부가 관세 정책을 실현할 경우 한국지엠의 실적 약화는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본사인 제너럴모터스(GM)가 철수 명분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죠. 다만 국내에서 생산되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미국으로 옮겨 생산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만큼 GM이 섣불리 한국에서 발을 빼기 쉽지 않다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해외공장 이전 검토, 7년전 군산 아픔도

폴 제이콥슨 GM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미국에서 열린 바클레이스 콘퍼런스에서 해외 공장 이전 가능성을 거론했습니다. 제이콥슨 CFO는 “미국 정부의 수입차 관세 부과 정책이 영구화할 경우 공장 이전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며 “관세 정책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비롯한 각국 공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니터링 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폐쇄된 한국지엠 군산공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한국지엠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재임 기간인 2018년 군산공장이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군산이 문을 닫은 직후인 같은 해 2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간담회 자리에서 “(한미FTA를) 공정한 협정으로 바꾸기 위해 재협상하거나 폐기할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가 그걸 하기 전에 GM이 한국에서 디트로이트로 돌아오게 됐다.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이런 소식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발언한 바 있습니다. 한국만 흑자를 내는 양국의 무역 관계가 불공평하다고 인식한 트럼프가 특정 업종, 특정 브랜드를 콕 집어 압박한 건 국내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경제 전체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죠.

7년 뒤 더 강력하고 노골적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돌아온 트럼프의 행보도 심상치 않습니다. 자국으로 수입되는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붙이는 안을 4월 2일에 발표하겠다고 언급했죠. 애초 4월로 예상됐던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 인상 방침도 한 달 앞당겨 오는 4일부터 부과하겠다고 하는 등 예측 불가한 그의 결정에 국내 자동차 업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입니다.

북미 실적 악화 ‘철수’ 빌미 여지도

미국으로 수출되는 차량에 관세가 붙지 않아도 한국지엠의 올해 상황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지난해 한국지엠은 49만4072대를 생산했는데, 이 가운데 47만4천735대가 해외로 수출됐죠. 미국으로 수출된 차량은 총 생산량의 41만8천782대로 81.8%에 달합니다.

문제는 해가 바뀌면서 미국 수출 실적이 후퇴했다는 점입니다. 한국지엠은 현재 창원공장에서 CUV(크로스오버 SUV) 쉐보레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인천 부평공장에서 SUV 트레일블레이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또 부평공장에서는 트레일블레이저의 파생모델인 뷰익 앙코르 GX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파생모델 뷰익 엔비스타도 생산 중이죠.

이들 차종의 수출 실적은 올해 들어 일제히 마이너스(-)로 전환했습니다. 트레일블레이저(파생모델 생산량 포함)의 1월 수출량은 9천522대로 전월(1만7천937대) 대비 46.9%, 전년 동월(1만6천597대) 대비 42.6% 감소했습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파생모델 생산량 포함)도 같은 기간 2만867대 수출됐는데, 전월(3만3천587대) 대비 41.0%, 전년 동월(2만3천703대) 대비 24.6% 줄었습니다.

한국지엠 해외 수출 실적(한국지엠 제공)

트랙스 크로스오버는 2023년 2월, 트레일블레이저는 같은 해 7월 새로운 모델이 출시됐으니 ‘신차 효과’를 누릴 시기가 지난 상황입니다. 미국 내 수요가 서서히 줄어들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차량 가격에 추가로 25%의 관세가 붙으면 판매량 하락은 불가피하죠. 두 차종 모두 미국 시장에서 중저가형 모델에 속하는 만큼 가격 경쟁력이 생명인데, 판매 가격이 오르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관세 인상이 현실화하면 한국지엠이 만드는 SUV 판매량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실적 부진은 GM에게 철수 명분을 주는 꼴”이라고 했습니다.

불 꺼진 한국지엠 부평 2공장 /경인일보DB
불 꺼진 한국지엠 부평 2공장 /경인일보DB

한국공장 대체지 찾기 쉽지 않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현실이 되면 GM은 과연 한국에서 발을 뺄까요?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SUV 차종들을 대체 생산할 지역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쉽지만은 않다는 시각입니다. 올해 들어 수출 물량이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미국 내 사회 초년생들과 가족 단위 소비자들의 ‘세컨드카’로 사랑받고 있는 차량들을 하루아침에 단종시킬 수는 없죠.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를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도 GM 입장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습니다. GM은 대형 SUV, 픽업트럭 등 미드에서 자주 등장하는 큰 차량을 미국 내 생산공장에서 만들고, 비교적 사이즈가 작은 차량은 한국과 멕시코, 브라질 등 해외 생산하는 전략을 유지해왔는데요. 자국 노동자들의 인건비를 고려하면 크고 비싼 차를 미국에서 생산해 팔아야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보다 인건비가 낮은 지역에 소형·준중형 차량 생산기지를 배치한 것도 같은 이유죠.

산업연구원 김경유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지엠이 생산하는 차종을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면 수익을 남기기 어렵다”며 “체격이 큰 미국인들이 소형 SUV 생산라인에 투입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문제도 있다”고 했습니다.

한국보다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공장을 옮기면 되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도 있습니다. 이 역시 가능성은 0에 수렴합니다. GM은 2000년대 후반부터 10년 동안 태국·인도네시아·호주·뉴질랜드 등에 위치한 공장을 모두 철수했기 때문이죠. 이들 국가에서 생산된 GM 차량의 판매실적이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철수 결정을 내렸는데, 한국공장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공장을 옮기는 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해외 시장 다변화 전략 절실

25%의 관세가 현실화하면 한국지엠이 만드는 차량들의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는 방법이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진단입니다. 지난해 공급망 분야에서 포괄적으로 협력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은 GM과 현대차그룹의 얼라이언스(동맹) 관계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으로 거론되죠. GM이 손을 뗀 동남아와 인도, 유럽 시장 등에 판매망을 형성하고 있는 현대차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지엠의 생산 차종이 진출하는 게 예시입니다.

김필수 교수는 “한국을 비롯해 해외에 많은 공장을 둔 GM 입장에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달갑지 않은 상황”이라며 “GM과 현대차가 어떻게 협업해 나갈지 두고 봐야겠지만, (관세정책이 장기화할 경우) 수출 시장 다변화 전략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고 했습니다.

/한달수기자 da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