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여기… 성(性) 노동자인 사람이 살고 있다” 용주골의 낮은 외침

 

市 ‘건물 매입후 철거’ 작업 진행중

보상 대상 아닌 여성들 60여명 남아

세입자 아예 없는 곳은 두 채에 불과

“그냥 밀려나, 이 사람들 갈 곳 없어”

노동·여성계 모두로부터 외면당해

폐쇄 예산 46억중 38억 건물매입비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의 지난해 2월 모습. /경인일보DB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의 지난해 2월 모습. /경인일보DB

파주시 용주골. 미아리 집창촌, 영등포 홍등가와 함께 매춘의 대명사처럼 불린 ‘용주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용주골 철거 계획이 발표된 지 어언 2년. 용주골에서 일하는 여성은 85명에서 60여명으로 줄었다. 이들은 지난해 철거 계획에 반대하며 종사 여성을 더 늘리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도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하는 곳에, 그것도 철거를 앞둔 구역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원래도 소수였던 이곳의 사람들은 더욱 소수가 되어간다. 용주골의 퇴장은 우아하지 않다. 굴착기가 건물 외벽을 부숴 소음이 땅을 울리고 시멘트 조각이 길 위로 뒹구는 야만적인 광경이다.

이 모습보다 야만적인 것은 아직 이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퇴장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사람이 산다. 건물 ‘매입 후 철거’를 노선으로 정한 용주골 퇴장 작업으로 누가 이득을 볼까.

용주골 사람들은 건물주만 배불리는 정책이라고 목소리를 모은다. 용주골 건물은 이곳 사람들의 숙소이자 거처이기도 했다. 임대차 계약서 한 장 없이 살아오긴 했어도 삶의 터전인 용주골이 사라진다.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기에 노동권을 주장할 수도 없고, 피해자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기에 피해자로서 보호받지도 못한다.

사라짐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용주골이 철거된 곳은 빈터로 남거나 번듯한 도로가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럼 이곳에 있었던 그들은 어디로 갈까.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아 노동계로부터 외면받고, 몸을 판 여성이라 여성계로부터 백안시 당한 이들의 이야기를 좇는다.

지난해 3월 8일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 설치된 펜스 앞에 놓인 종이 팻말. 2024.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해 3월 8일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 설치된 펜스 앞에 놓인 종이 팻말. 2024.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 결국 웃는 건 ‘용주골 건물주’

파주시는 올해를 성매매 집결지 폐쇄 원년으로 삼고 46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그중 38억6천만원은 건물 매입비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일부 건물을 매입한 뒤 철거해 성매매 업소 운영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계획이다.

건물만 철거하면 성매매 업소 운영이 사라질 것처럼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이미 성매매는 디지털 세상으로 숨었고 이 모든 과정에서 보호받는 것은 건물주뿐이다. 지자체는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지만 실제 철거가 가능한, 세입자가 한 군데도 없는 건물은 두 채에 불과하다. 일부 건물주는 매입가 상승을 기대하며 버티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논리에 기대 건물 값을 올리는 건물주와는 반대로 용주골 성노동자들을 보호할 법적 울타리는 없다. 이들 대부분 임대 계약 없이 월세를 내고 건물에 거주해 왔기에 주거권이나 퇴거 보상 같은 보호 조치에 기대기 힘든 상태다. 일반적인 도심 내 원룸을 떠올려보면 세입자들이 임대인의 요구로 퇴거해야 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다만 이들 성노동자는 세입자로 인정받지 못할 뿐이다.

이 지역은 부동산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파주시가 건물을 매입해주면 건물주에게 유리한 조건이 형성된다. 이 때문에 건물주들이 성매매 업소 사장들에게 먼저 철거를 요구한 뒤 세입자인 성노동자 여성을 내쫓을 우려도 커지고 있다.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내 성노동자들이 떠난 한 건물의 모습. 현재 이곳에서는 파주시의 강제 철거가 진행 중이다. 2025.3.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내 성노동자들이 떠난 한 건물의 모습. 현재 이곳에서는 파주시의 강제 철거가 진행 중이다. 2025.3.6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이곳에서 24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최모(60대)씨는 정작 철거되는 건물은 극히 일부에 불과해 시의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의문을 표했다.

“30억원 넘는 예산을 받았다는데 사실 시에서 원하는 조건(세입자가 없고 즉시 거래가 가능한 곳)을 갖춘 건물들이 별로 없어요. 결국 몇 개 없는 빈 건물을 사들이고 있는 거죠.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은 법적으로 세입자도 아니고 보상 대상도 아니에요. 그냥 밀려나는 거죠. 시는 건물을 사지만 이 사람들은 갈 곳이 없어요.”

건물주 배불리기 우려는 시의회에서도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제251회 제2차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일부 용주골 건물주가 타지역에서 성매매 업소를 운영하고 있어 시의 매입으로 건물주가 이득만 보게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한 시의원은 “… 이(용주골) 안에는 지금 서울에서 성매매업소를 하고 있는 사람의 건물도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최소한은 재정적으로 도와주면 안 된다”고 꼬집었지만 시 관계자는 “… 매입 대상지 중에서 미아리 성매매업소 업주가 있다고 말씀했는데, 효과적인 폐쇄를 (위해) 건물 소유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등을 고려하기보다는 성매매 집결지의 조속한 폐쇄에 대한 효과성을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성매매 집결지를 신속하게 청소하는데 방점이 찍혔다는 것이다.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종사 여성과 연대단체 시민들이 파주읍의 펜스 철거에 맞서 서로 팔짱을 끼며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다. 2025.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종사 여성과 연대단체 시민들이 파주읍의 펜스 철거에 맞서 서로 팔짱을 끼며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있다. 2025.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 ‘주거권 지키기’ 소수자들의 국제적 연대

해외도 도시개발 ‘눈엣가시’ 취급… 지원금 받으려 ‘피해자 되기’ 거부

 

‘성매매 합법’ 네덜란드 노동자 찾아와

주거 미보장 행정집행 ‘인권침해’ 우려

“피해자라고 인정해야 지원해준대요. 우리가 피해자라고요? 근데 나는 여기서 내 힘으로 돈 벌고 내가 선택해서 일하는 거예요. 왜 내가 피해자가 돼야 하죠?”(용주골 성노동자 A씨)

현재 국내에서 성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연대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1월 파주시의 강제 철거에 맞서 용주골에 농성장을 꾸린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는 이곳 여성들의 현실을 해외에 알리며 국제 연대를 추진 중이다.

지난 7일에는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성노동자가 파주 용주골을 찾아 이곳 성매매 종사자들과 서로의 처지를 공유했다. 한국과의 공통점은 도시 개발이 진행될수록 성노동자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겨져 터전을 잃고 쫓겨난다는 점이었다.

네덜란드는 성매매가 합법인 국가지만, 암스테르담 시장 펨커 할세마는 당사자들과의 충분한 논의 없이 홍등가 영업장 축소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진보 정당 소속 정치인이자 백인 여성 페미니스트로 알려졌으나 성노동자의 권리 문제에서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며 갈등을 빚고 있다.

이처럼 성노동자들은 어느 나라에서나 보이지 않아야 할 대상으로 취급되며 도시 개발이란 명분 아래 밀려나고 있다. 파주시는 용주골을 정화하겠다고 공표했지만, 정작 사라지는 것은 성매매가 아니라 성노동자들의 터전이다. 그리고 정화되는 것은 도시가 아닌, 사회가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다.

지난 8일 오후 1시40분께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이곳 종사 여성이 담벼락 위에 올라가 펜스 철거를 막으려 시위하고 있다. 2025.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지난 8일 오후 1시40분께 파주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에서 이곳 종사 여성이 담벼락 위에 올라가 펜스 철거를 막으려 시위하고 있다. 2025.3.8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이 모든 과정은 국제 인권규약 위반 소지도 있다. UN 강제퇴거 지침(2007) 제4항·제16항과 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규약(ICESCR) 등에 따르면, 실질적인 주거권과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진행하는 강제 철거는 심각한 인권 침해로 간주된다.

결과적으로 공권력에 의한 ‘소수자 청소’ 사례로 기록될 수 있는 것이다. 주거권을 고려하지 않은 행정집행에 대항력은 매우 열악하다. 한 국제 인권단체 본사에 해당 사안에 대해 문의하자 “업무 부담이 커 답변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공식답변을 하지 않았고, 인권 관련 활동을 하는 국내 시민단체도 자문하기가 꺼려진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성매매 노동자는 최후의 주거권 문제에서도 터부(taboo)시됐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