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가 나아갈 길’ 전문가 제언
학원비 지출 비율 높아 취지 의문
인센티브 혜택 업종별 차등 주장
캐시백 방식 전환 빠른 소비 촉진
지역 정체성 고민 부족 비판 제기
수치 경쟁 매몰… 맞춤 정책 필요

경기지역화폐 체제가 본격 도입된 후 6년 동안 경기도는 전국 지역화폐 정책의 선두주자였다.
코로나19 대유행, 고물가 상황과 맞물린 경기 침체 등을 거치며 얼어붙은 지역경제에 돈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일정부분 기여했지만 효용성을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도 이어졌다. 운영 10년차를 앞두고 지역화폐가 정말 지역경제의 효자로 거듭나게 하려면, 본 취지를 살리기 위한 정책 공론화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각 쟁점들에 대해 지역화폐 이용 당사자인 소상공인과 소비자, 그리고 전문가 등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지역화폐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해봤다.
■ 학원보단 골목 경제 살려야
경기지역화폐 전체 결제액의 4분의1이 넘는 비용이 학원비에 쓰이는 현실은 7년차를 맞은 경기지역화폐의 근본적인 취지에 물음표를 띄운다. 이는 소상공인들이 그간 지역화폐로 인한 골목상권 활성화 효과를 충분히 체감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송철재 수원시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소상공인들은 지역화폐 활성화를 환영한다”면서도 “지난 설에도 많은 돈을 들여 지역화폐 인센티브에 투자했지만, 정작 대부분 학원비로 나가 골목상권에는 골고루 배분되지 못했다. 시행착오를 겪었으니 이제 지자체가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런 문제를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센티브나 캐시백 등의 혜택은 업종별로 차등을 둬야 한다. 특히 외식업 등 물가 의존도가 높은 업종에 사용할 때는 (혜택을) 더 많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종별, 혹은 매출액별로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혜택을 차등화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업체에서의 소비를 유도하자는 것이다.
이는 지역화폐 사용처를 무분별하게 늘려서는 안된다는 지적과도 이어진다. 소비자 효용 측면에선 지역화폐 사용처를 늘리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역화폐의 본 취지는 소비자 효용 상승이 아닌 ‘지역경제 활성화’가 우선이기 때문에 정책 목표를 분리해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영성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어떻게 정책을 설계하든) 모든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물론 지역화폐의 정책 목표 중 소비자 효용이 있는 것은 맞지만, 지금은 지역경제 활성화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쟁여두기’ 아닌 소비 촉진 유도하려면
많은 소비자들이 “일단 받고 본다”는 식으로 인센티브 획득에 몰두한 뒤 쓰지 않고 ‘쟁여 두는’ 실정이다. 소비를 빠르게 유도해 골목 상권에 보다 조속히 돈이 돌게 하려면 혜택을 주는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지역화폐 충전 단계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게 아니라, 결제를 했을 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캐시백’ 형태가 대표적이다.
이미 인천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타 시·도는 캐시백 형태로 지역화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도내에서도 안성시, 부천시 등이 캐시백 형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공공이 재정을 들여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것은 같지만, 소비 촉진 효과는 더 크다는 분석이다.
김건호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경기지역화폐는 기본적으로 유효기간이 5년이다. 유효기간 자체를 줄여 보다 빠른 소비를 유도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실사용했을 때 캐시백을 하는 방식이 소비 촉진에는 효과적”이라며 “안성시에서 10% 인센티브에 더해 15% 캐시백해주는 형태를 도입해 운영 중이다. 캐시백 관련 예산이 떨어지면 그 이후엔 지역화폐로 결제해도 캐시백을 받지 못하니, 경쟁적으로 빠르게 소비하도록 유도해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형태로의 개편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지역화폐에 ‘지역’이 없다…지역 정체성 반영해야
경기도 31개 시·군의 지역화폐는 거의 비슷하다. 사용처나 인센티브, 정책 발행 등에 있어 지역별로 특화하기 보다는 타 지역에서 하는 것을 따라하는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지역화폐가 장기적으로는 공공 재정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 소비자들이 스스로 이용하는 결제 수단으로서 자립하려면, 결국 지역성을 담아 각 지역 주민들에게 매력 있게 다가와야 하는데 이런 고민은 부족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지역화폐에 ‘지역성’을 보다 불어넣어, 혜택도 각 지자체 특색에 맞게끔 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가 본래 목적대로 ‘지역 맞춤형’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선, 그 지역의 특색·정책과 밀접하게 사용되는지에 대해 연구와 판단이 필수적”이라며 “예를 들어 학원가가 성장하는 게 궁극적으로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지역화폐의 학원비 결제를 허가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는 지자체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지자체에선 사용처에서 학원을 과감히 제외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각 지자체들이 상대적으로 발행액이나 인센티브 지급액 등 수치 경쟁에만 매몰돼 있는 점도, 각 시·군이 지역화폐를 얼마나 지역친화적이고 다양성 있게 운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방증이라는 의견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지자체들이 지역화폐를 지금보다 활성화시키려면 더 실험적이어야 하고 서로 배우며 발전시켜야 한다”며 “발행주체인 시·군이 우리 동네 경제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기도는 경기지역화폐 심의위원회를 통해 여러 개선 방안을 논의해볼 계획이다. 자료를 세분화해 분석하며, 개선방안을 도출하겠다는 입장이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강기정·이영지·김태강 기자(이상 정치부), 김지원 기자(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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