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낮춘 미술관… 일상과 예술의 경계 허물다

 

동물탈 눕거나 앉은 6명 팻말 퍼포먼스

김홍석 작가 ‘침묵의 고독’ 극사실주의

박길종, 청소용품 매달아 오브제 형상화

김홍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고독’.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김홍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고독’.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동물 탈을 쓴 6명의 인물이 미술관을 배경삼아 꽤 편한 자세로 자리한다. 몸을 웅크린 채 한쪽으로 돌아눕거나 손으로 몸을 받친 채 뒤로 기대어 앉아있기도 한다. 그들 앞에는 자그마한 팻말이 하나씩 놓여있다. 팻말에는 이들이 퍼포먼스에 참여한 이유가 담겨있다.

각자가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평소 미술관을 찾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청소 용역 노동자로 일하다 회사로부터 고발당해 길거리에 내몰린 사람, 대형화물 운전자로 일한 후 현재 무직인 사람, 국가가 정치적 견해를 제한한다고 판단해 탈출한 뒤 한국에 온 사람까지.

김홍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고독’.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김홍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고독’.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전시실 초입에서 만난 김홍석 작가의 작품 ‘침묵의 고독’은 미술관에 대한 문턱을 낮추려했던 작가의 의도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극사실주의를 표방한 인체 조각으로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이는 관람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으로, 대상을 도구화하지 않으려 했던 작가의 윤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박길종·김홍석 작가가 전시실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박길종·김홍석 작가가 전시실 입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지난 25일부터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열린 ‘2025 아워세트: 김홍석 x 박길종’전은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김홍석 작가와 박길종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김홍석 작가는 사회적인 합의를 만드는 제도와 시스템, 개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조각, 영상, 퍼포먼스, 설치, 회화 등 다양한 매체로 작업한다. 박길종 작가는 가구, 아이템 제작, 디스플레이, 전시 등의 매체로 일상에서 마주한 장면을 독특하게 변주한다.

박길종 작가가 ‘전시 보행기’ 시연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박길종 작가가 ‘전시 보행기’ 시연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이번 전시에선 박길종 작가의 작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가 첫선을 보인다. 보행기에 여러개의 청소 용품을 매단 작품으로, 전시가 끝난 현장을 치우던 청소노동자의 모습에서 독특한 사물의 질서를 포착해 오브제로 형상화했다.

관람객은 도구와 가구, 기구 등 쓰임의 경계가 혼합된 작품을 통해 퍼포먼스를 수행하는 이용자이면서 목격자의 위치에 놓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런 이유에서 이 작품은 2년 전 선보인 ‘전시 보행기’와도 닮아있다.

박길종 작가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는 앞쪽에 설치된 라이트를 켜고 걸으면 먼지가 더 잘보인다는 점을 작품명에 반영했다”며 “전시 보행기는 유아차에 폐지를 모아 줍는 할머니를 보고 착안한 것으로 비슷한 작품을 전시실에 두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김홍석 작가가 작품 Oval Talk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김홍석 작가가 작품 Oval Talk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전시실에선 김홍석 작가의 ‘Oval Talk’ 작품도 눈길을 끈다. 타원형의 오브제 뒤에선 구의 탄생 설화를 본인만의 예술적 언어로 표현한 작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김홍석 작가는 “수많은 신화에서 인간을 대신해 동물이나 알을 신성시 여긴다는 점에서 완벽한 도형은 구라고 생각했다”며 “1998년부터 텍스트를 썼고 조각은 2000년에 완성했는데 당시 미술계에서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이 나오던 때”라고 말했다.

박길종 작가의 ‘개미굴 체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박길종 작가의 ‘개미굴 체스’. 2025.3.25 /이시은기자 see@kyoengin.com

이외에도 보도블록 틈 사이를 비집고 올라온 개미굴에 대한 박길종 작가의 시선이 담긴 ‘개미굴 체스’, 하수구 배수 그레이트 사이로 빼꼼 나온 식물을 연상시키는 ‘여름 그늘’, 동양의 매란국죽을 서구적인 재료인 아크릴 물감과 모델링 페이스트로 그려낸 김홍석 작가의 회화 ‘사군자-231234’ 등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10월12일까지 이어진다.

/이시은기자 se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