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기업 ‘미다스의 손’… “삶 일으키는 이웃 응원할 것”
7곳 인큐베이팅 5곳 사회적기업 전환
‘맛들식품’ 5년만에 빚털고 16억 매출
소자본 1인식당 열 수 있는 방안 모색

이한열 열사의 죽음과 1987년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의 김태리 역 실제 인물, 이정희(59) YMCA 구리시지부(구리 YMCA) 사무총장.
그는 80년대 뜨거웠던 민주화 운동의 열기를 구리시로 가져와 1997년 IMF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구리시민들의 삶을 일으키는 데 열정을 쏟아왔다. 이 사무총장은 1994년 처음 생긴 구리 YMCA 창립멤버다.
구리 YMCA가 지역 최초로 시행한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특히 이 사무총장이 힘을 쏟은 것은 자활기업이다.
이 사무총장은 자활센터에서 실무자로, 센터장으로 일하는 기간 동안 7개의 자활사업체를 인큐베이팅 하고 5개 사업체를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시키는데 성공했다. 사회적 기업계의 ‘미다스의 손’으로 꼽힌다.
돌봄, 집수리, 택배, 도시락, 청소, 재활용 중간처리업 등 자본과 기술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몸을 쓰는 일이 자활기업의 분야가 됐다. 이중 재활용 업체만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나머지 기업들은 모두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에 성공했다.

이 사무총장은 “(자활사업을)복지라기보다는 사회개혁과정으로 생각했다”며 “시장에서처럼 사람을 부품으로 대하지 않았다. 이분들이 어떻게 자립할 지, 앞으로 어떻게 살 지를 총체적으로 상담하고 의논하고 격려하는 과정을 함께 진행했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회상했다.
이중 ‘맛들식품’에 대한 애정은 특별하다. 이 사무총장은 현재 이 기업의 월급을 받지 않는 대표이사다.
맛들식품은 갈비탕, 돈까스 소스 등을 만들다 정부의 지원이 끊김과 동시에 3억원의 채무를 안고 망했다. 보통 인큐베이팅을 하고 안정화되면 사업체를 넘겼기에 이 사무총장은 발을 뗀 상태였는데 망하자 다시 뛰어들었다. 고기납품업체, 마늘납품업체 등에게 진 빚을 그냥 보아 넘길 수 없어서다.
그는 겨우 1명 남은 직원과 낮에는 사무총장으로, 밤에는 재료손질로 일했다. 주말에는 생협 시식코너에서 일하고, 새벽에는 납품하면서 기업을 소생시켰다. 5년만에 빚을 털고 지금은 14명의 직원을 두고 16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사무총장은 “우리 직원들 중에는 신용불량자, 히키코모리 등도 있었다. 이들에게 신용회복을 안내하고 대인관계를 토닥이는 것도 대표의 일이다. 10년이 넘게 일하니 이분들도 변했다”고 성과를 전했다. 그러면서 “요새는 육체노동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분들이 고된 노동시장에서 은퇴하고 소자본 1인식당을 열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생협을 엿본 이 사무총장은 의료 사회적 협동조합도 창립했다. 바로 느티나무조합의 느티나무의원이다.
이 사무총장은 “일반 병원이 환자를 이익의 수단으로 본다면, 우리는 인간다운 의료를 실천하는 현장으로 본다. 우리의 주치의제도로 조합원의 건강을 관리하고 병 예방에 힘을 쓴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정관에 못박았다”고 했다.
청춘을 구리 시민사회에 쏟아부은 이 사무총장도 최근에는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회의적이다. 위기를 맞은 셈이다. 그는 “시민사회의 활동을 제도권에서 흡수해 이제는 공공영역과 시장영역만 남고 시민사회 영역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가치중심의 비영리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 영역이 축소되고 활동이 위축되면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깊다”고 털어놨다.
특히 26년간 유지하던 녹색가게의 폐지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현 집행부는 구리YMCA가 시유지를 받아 유지하던 상설 녹색가게 부지를 도로 돌려받았다.
이 사무총장은 “창립 이후 26년간 유지해오던 재사용 사업터를 가져가 놓고, 다른 재활용사업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현 시장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고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구리/권순정기자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