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계몽활동가 임면수 선생

 

조선말기 수원군서 태어나 근대학문 배워

대구 국채보상운동, 수원 확산 중심 역할

1912년 가족 이끌고 만주로 무장운동 투신

 

부인 전현석·장남 임우상 독립운동 헌신

삼일학교 설립 기여… 교감·교장도 역임

광복 70주년 2015년 기념사업추진위 조직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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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수원지역에서 애국계몽활동가이자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자로서의 면모를 발휘한 임면수(1874~1930) 선생은 어두운 시대의 의인이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놨고 가족도 광복을 위해 헌신했다.

필동 임면수 선생. /수원시 제공
필동 임면수 선생. /수원시 제공

■ 임면수 선생은

임면수는 151년 전인 1874년 6월 수원군 수원면 북수리 299번지에서 출생했다. 조선 말기 수원의 지역 유지 집안에서 2남으로 태어난 그는 성인 이후 실용적인 근대 학문에 뜻을 뒀다. 1903년 수원 양잠학교를 졸업하고, 일어 공부를 위해 사립 화성학교를 다니며 1905년 4월 1회 졸업생에 이름을 올렸다.

서울 상동교회에서 운영한 중등 교육기관 상동청년학원의 야간학교를 다닌 임면수는 대한제국기 수원지역의 다양한 조직과 단체에서 활동했다. 수원지역 유지들과 힘을 합쳐 삼일학교 설립에 기여했고, 삼일학교 교감과 교장을 역임하며 사립학교 설립 운동을 후원하는 등 교육운동에 힘썼다.

특히 1907년에는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을 수원으로 확산시키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은 임면수 활동의 전환점이 됐는데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신민회를 중심으로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려는 뜻을 모았고, 이에 동참한 그는 만주로 망명했다. 1912년 2월,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넌 그는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만주에서 임필동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임면수는 신흥무관학교의 유지비와 군사훈련비를 조달하기 위해 동포들을 순방하며 동분서주하고, 경학사와 부민단 등 만주 한인 자치 조직에도 참여했다. 결국 임면수는 1920년 해룡현에서 일본군 토벌대에 체포돼 조선으로 추방됐고 철령으로 압송되던 중 한국인 경찰 유태철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낮에 숨고 밤에 걸어 14일만에 길림성 농촌 마을에 은둔해 겨울을 났지만 1921년 길림시내에서 다시 활동을 하던 중 밀정의 고발로 길림 영사관에 체포돼 평양 감옥으로 압송됐다.

이후 고문으로 전신이 마비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끝내 광복을 보지는 못한 채 1930년 11월29일 56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임필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임면수(아랫줄 오른쪽)의 체포 당시 사진. /수원시 제공
임필동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임면수(아랫줄 오른쪽)의 체포 당시 사진. /수원시 제공

■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독립 명문가

임면수는 민족을 위해 자신의 재산을 쓰는데 아낌이 없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과 화재 참변으로 동포들이 어려움을 겪자 모금 운동에 동참했고 1907년엔 수원에서 삼일학교 모금운동이 펼쳐졌는데, 이때에도 참여했다. 또 삼일학교가 재정문제를 겪던 1908년에도 동참했으며 만주로 망명할 당시 희사한 부지에는 1913년 삼일여학교가 세워졌다.

임면수의 부인인 전현석(1871~1932)은 만주에서 독립운동 뒷바라지를 했고 임면수와 전현석의 5남 2녀 중 장남 임우상(1893~1919) 역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임우상은 1919년 수원으로 돌아와 군자금을 모아 서간도로 돌아가던 중 혹한을 이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지난 2024년 3월 3·1운동 105주년 기념식에서 임면수 선생의 후손 임병무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지난 2024년 3월 3·1운동 105주년 기념식에서 임면수 선생의 후손 임병무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수원이 기억하는 임면수

1980년 대통령표창으로 독립유공자로 등록됐던 임면수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세류동 공동묘지에 안장됐던 그의 유골은 1964년 삼일상고 동산으로 옮겨졌고, 이후 현충원으로 이장돼 영면에 들었다. 삼일동산에는 임면수의 호를 딴 ‘필동관’이라는 건물이 들어서 후학이 양성되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았던 2015년에는 수원에서 임면수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 돼 학계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조직됐다. 이들은 수원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임면수 동상을 세웠다.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 수원시민이 모금해 건립한 임면수 동상 앞에서 제막식이 열려 수원시민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수원시 제공
광복 70주년이었던 지난 2015년 수원시민이 모금해 건립한 임면수 동상 앞에서 제막식이 열려 수원시민들이 만세를 외치고 있다. /수원시 제공

지난해에는 임면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임면수를 기억하는 노력이 더해졌다. 수원박물관은 ‘필동 임면수,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라는 기획으로 찾아가는 전시회를 열었고 같은 해 11월 말에는 임면수의 생애와 독립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심포지엄을 열었다.

수원박물관 관계자는 “독립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과 삶을 바친 임면수 선생과 같은 순국 선열들이 있기에 광복 80주년인 오늘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수원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간직하고 기억하며, 기록하는 일에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