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관청 ‘충훈부’ 역사 간직
안양천 따라 벚꽃길 펼쳐져
올해 늦은 개화, 아쉬운 발길

안양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들에게 물었다. “안양에서 벚꽃이 가장 예쁜 곳은?”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이 한결같다. “충훈부 벚꽃길.”
충훈부는 안양 만안구 충훈동을 가리킨다. 충훈동은 오랫동안 석수동에 편입돼 있다가 지난해 1월 ‘석수3동’에서 충훈동으로 행정동 명칭이 변경됐는데, 시민들은 여전히 석수동으로도, 충훈동으로도 부르지 않고 ‘충훈부’라고 부른다. 오랜 역사를 통해 이어온 충훈부 명칭이 더 익숙한 때문이다.

충훈부(忠勳府)는 조선시대에 국가에 공훈이 많은 공신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국가보훈부가 하는 역할이다. 충훈부 본청은 수도 한양에 있었는데, 이곳 안양 석수동·박달동 일대에서 광명시 철산동·광명동 일대 넓은 땅이 충훈부 관할 토지였다. 이 지역을 경작하는 농민들로 이 일대에 마을이 형성됐고, 이 마을의 이름을 관할 관청의 이름을 가져와 충훈부 라고 부르게 됐다. 충훈동 한가운데 아파트단지 안에 자리한 꽃메산어린이공원 입구에는 이런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시민들이 세워놓은 충훈부 표지석이 서 있다.

석수동과 박달동 사이를 흐르는 안양천은 충훈동을 오른쪽으로 두고 북쪽으로 휘돌아 서울 금천구 방향으로 흘러간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충훈벚꽃길’은 안양천이 감아도는 충훈동 남쪽 하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안양에서도 벚꽃길이 화려하기로 손꼽힌다. 벚꽃길 아래 넓은 하천부지에는 안양시가 봄마다 각양각색의 꽃을 심어 벚꽃길과 꽃밭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꽃동산을 만든다.

올해는 이곳에서 5일과 6일 주말사이 ‘충훈벚꽃축제’가 열렸다. 전날 촉촉한 봄비가 내린 축제장을 6일 찾아갔다. 변덕스러운 날씨 탓에 벚꽃은 아직 활찍 피어나지 않고 이제 막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며칠만 지나면 ‘안양 벚꽃 1번지’라는 명성에 걸맞는 아름다운 벚꽃 잔치가 펼쳐질텐데, 조금 늦은 개화가 아쉬웠다. 하지만 안양천을 따라 피어난 노란 개나리꽃들과 천변 꽃밭을 알록달록 수놓은 꽃들, 그리고 비 온 다음날의 상쾌한 공기가 벚꽃을 대신해 나들이객들을 반긴다.

올해 축제는 초대형 산불이라는 국가재난과 희생자 발생에 따른 애도 상황을 고려해 지난해보다 축소됐다. 특히 화재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화기를 사용하는 먹거리 부스와 푸드트럭 운영을 모두 취소하면서 예년의 북적이는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축제 첫날인 5일에는 하루종일 비가 내려 시민들이 많이 찾지 못했지만, 비가 그치고 화창한 날씨가 펼쳐진 6일에는 많은 시민들이 벚꽃길과 안양천변 꽃길을 따라 걸으며 봄기운을 만끽했다.

아기들을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들, 함께 나들이 나온 가족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나온 사람들 등등 다양한 사람들로 벚꽃길과 안양천변이 북적였다.
축제장을 둘러본 후 충훈동 중심부로 발걸음을 돌렸다. 충훈동은 남쪽과 서쪽으로 안양천이 흐르고, 북동쪽으로 와룡산과 꽃메산이 감싸고 있다. 그 사이 평지에 빌라와 다세대주택, 상가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주택가가 자리해 있는데, 오랜 역사만큼이나 건물들이 노후해 전통적인 구도심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안양의 역사와 함께 한 이 동네는 앞으로 공공 정비사업으로 진행되는 ‘충훈부 일원 재개발 사업’을 통해 2천500세대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변화된다. 복잡하고 비좁은 구도심 주택가가 번듯한 아파트단지로 바뀌면 주민들의 삶의 질은 훨씬 좋아질 전망이다.
안양의 역사와 함께 한 오랜 동네가 사라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도 든다. 충훈시장의 북적이는 모습, 오래된 가게 주인과 주민들의 넉넉하고 정겨운 모습들은 재개발 이후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힘을 모아 ‘충훈부 표지석’을 세워놓을 만큼 충훈부 역사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온 주민들이 있는만큼 이곳의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벚꽃길은 앞으로도 안양의 기록이자 명소로 남아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양/박상일기자 metro@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