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최고본 애국창가집
개화기~1910년대 유행했던 대중가요
‘가로 17㎝·세로 21.2㎝’ 손봉호 필사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
12장 애국가에 초창기 후렴구 흔적
일제강점기 이전 유일 국가유산급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한국의 근대 문학 자료 전반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운영·관리하는 전국의 유일한 공공 종합 문학관이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자료만 3만6천여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국내외 유일본, 희귀본 등 국가유산급 자료도 상당수다. 경인일보는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가치 있는 자료들을 10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자 주
BTS(방탄소년단)의 대표곡 ‘Dynamite’(2020)가 “환하게 밝힐 거야”(Light it up like dynamite)란 가사로 긍정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며 당시 코로나19 팬데믹에 휩싸인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듯, 당대에 유행한 노래는 그 시대상을 반영한다.
창가(唱歌)는 서양식 악곡의 형식을 빌려 우리말로 지은 노래다. 개화기부터 1910년대까지 널리 불린, 지금으로 따지면 대중가요다. 그 시대 여러 양상의 창가가 있었겠지만, 민중이 애창한 노래는 주로 ‘애국’이나 ‘계몽’을 주제로 했다고 한다. 이런 곡들을 ‘애국창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창가의 흔적은 우리나라 ‘애국가’에 뚜렷하게 남아있다. ‘애국가’의 후렴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불린 애국창가의 가사이기도 했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애국창가집 ‘창가’(唱歌)는 현재 전해지는 창가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17㎝, 세로 21.2㎝ 크기로 부드러운 한지에 애국, 계몽 등을 주제로 한 창가들을 손으로 직접 쓴 책이다. 이 책의 첫 장을 보면, 1910년 7월15일 손봉호(孫鳳鎬)라는 인물이 필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1910년 8월29일) 직전에 필사된 것이다.

대중음악사학자 장유정 단국대 교수가 2019년 한국민요학회가 발행한 ‘한국민요학’ 56집에 게재한 논문 ‘현전 최고(最古) 애국 계몽 가요집 손봉호의 창가 연구’에서 이 책을 구체적으로 연구했다.
장유정 교수의 해당 논문에 따르면, 손봉호 ‘창가’는 목록 3쪽을 포함해 총 32쪽 분량으로, 제1장 ‘정신가’(精神歌)부터 제14장 ‘건원절(순종탄신일)’까지 14곡의 창가가 수록됐다. 목록상 27곡이 수록됐다고 나타나는데, 뒷부분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손봉호 ‘창가’에 수록된 27곡 가운데 4곡의 제목에 ‘애국가’가 들어가 있다. 이 중 제12장 ‘애국가’는 초창기 애국가 곡조로 쓰인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 사인’의 곡조에 가사를 얹은 곡으로, 현재 ‘애국가’의 후렴구를 볼 수 있다.
또 제목에 ‘학도’가 들어가 있는 노래도 5곡이나 된다. 장유정 교수는 논문에서 “현행 ‘애국가’ 이전인 1910년 당시에 다양한 애국가가 존재하고 불렸던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며 “‘애국’과 ‘교육’을 목적으로 간행된 노래집”이라고 설명했다.
연도가 표기된 창가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창가집으로는 1914년 북간도에서 발간된 ‘최신창가집’과 1916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간행된 ‘애국창가’(국가등록문화유산)다. 한국근대문학관이 소장한 손봉호 ‘창가’는 두 책보다 수년 먼저 나온 데다, 현재까지 일제강점기 이전의 유일한 창가집이다. 국가문화유산급 가치를 지녔다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손수 쓴 손봉호란 인물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책 맨 뒷장에는 의미를 확정할 수 없는 숫자, 한자, 영문이 적혀 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본의 탄압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애국창가를 써서 남긴 손봉호는 여전히 미지의 인물이지만, 그가 필사할 당시의 절절한 마음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