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세계인의 밥도둑… ‘김이야, 옥이야’ 귀한 대접

 

봄철 막바지 수확 한창인 ‘궁평항’

수질 깨끗한 먼 바다 찾아서 양식

 

‘K-김’ 2년 연속 수출 1조원 달성

경기도, 3년새 생산금액 3배 껑충

경쟁력 갖춘 미래 먹거리로 주목

K-푸드의 중심인 ‘김’이 경기 바다의 효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김이라고 하면 여전히 남쪽의 바다만을 떠올린다. 그래서인지 경기도의 김은 매해 생산액을 경신하면서도 버젓한 이름(브랜드)은커녕 번듯한 집(가공 공장)조차 없다. 또 다른 지역으로 팔려나가면서 그 가치나 대우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경기도의 김에 집과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디려 한다.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이 K-푸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브랜드·가공 공장이 없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 1일 화성시 궁평항에서 한 선원이 경매 시작전 수확한 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25.4.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이 K-푸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브랜드·가공 공장이 없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은 지난 1일 화성시 궁평항에서 한 선원이 경매 시작전 수확한 김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2025.4.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화성 궁평항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고 바다엔 해무가 가득했다.

지난 1일 새벽 6시. 어슴푸레한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궁평항 선착장에서 젊은 선장 이정민(27)씨는 길창호의 시동을 걸었다. 이른 아침 바다를 가르며 김 양식장으로 향하는 배는 봄의 문턱에서 또 한 철을 마무리하러 나아가고 있었다.

4월은 김 농사의 한해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달이다. 차가운 바다에서 자라는 김은 수온이 오르기 전 마지막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 그래서 이날은 ‘탈탈이’라 불리는 마무리 작업이 진행됐다. 김 양식 틀에 남은 잔김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털어내는 작업이라 어민들은 “탈탈 턴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렀다.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이 K-푸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브랜드·가공 공장이 없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은 화성시 궁평항 일대 김양식장에서 어부들이 김을 수확하는 모습. 2025.4.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이 K-푸드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지만, 경기도에서 생산되는 김은 브랜드·가공 공장이 없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진은 화성시 궁평항 일대 김양식장에서 어부들이 김을 수확하는 모습. 2025.4.1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궁평항의 김 양식장은 육지에서 멀었다. 수질이 더 깨끗한 먼 바다를 찾아 어민들은 궁평항에서 한 시간 가까이 배를 몰고 나간다. 동이 틀 무렵 거대한 김 양식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수면 위에 일렬로 쭉 뻗은 검은 김발 수십 줄은 마치 거대한 회로처럼 정돈돼 있었다. 양식장을 보여주는 이씨의 얼굴엔 자부심이 배어 있었다.

커다란 갈고리를 단 김 채취선은 ‘ㄹ’자 모양으로 양식장을 돌며 김발을 끌어올렸다. 평소에는 김을 잘라 일부만 채취하지만, 탈탈이 날엔 예외다. 배가 지나간 자리엔 검은 김발이 말끔히 사라졌다.

오전 9시 수면에 반사되는 태양 빛에 제법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어민들은 조업을 마치고 서둘러 배를 돌렸다. 전국 김 경매가 일제히 시작되는 오전 11시에 맞추기 위해서다. 수확한 김의 표본을 먼저 육지로 보내고, 채취선엔 나머지를 가득 싣고 항구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 20t의 김이 거대한 자루에 담긴 채 항구에 도착했다. 궁평항 수협에선 8개 양식장의 김이 경매에 올랐다. 항구에 들어온 크레인 차량이 경매가 끝난 김을 도매인들의 트럭으로 한가득 담아 보내자 비로소 어민들은 숨을 돌렸다.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K-김이 지난해 2년 연속 수출 1조원을 달성했다. 세계 김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탄탄한 입지를 자랑하는 우리 김이 경기도에서도 생산되고 있다. ‘검은 반도체’라 불리는 김을 만들어내는 양식업은 과연 경기도의 미래 먹거리로서도 유효할까.

20일 통계청 어업생산동향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도내 김 양식장의 생산금액은 3배 이상 높아졌다. 생산량은 큰 차이가 없는데 금액이 높아진 것은 그만큼 김의 가치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22년 경기도 김 생산량은 2만3천t으로 생산금액은 167억1천여만원으로 집계됐다. 본격적인 김 호황이 왔던 2023년이 되자 생산량은 2만2천t으로 전년 대비 줄었음에도 생산금액은 229억7천여만원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지난해 2만5천t을 생산한 경기도 김 양식장들은 509억3천만원의 생산금액을 기록했다.

이처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김 양식업과 관련해 어민들 역시 경기바다에서 경쟁력을 갖춘 가치있는 산업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지원·구민주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