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남한강 옛 지명) 위 솟은 검은 말… ‘마암의 전설’ 흐른다
비스듬한 형체, 남한강쪽 노출된 모서리
윤슬 비치면 마치 ‘물 위의 바위’ 같아…
왜구로 막힌 물자수송 한줄기빛 ‘수송로’
水와 엮인 오랜 지역사 수공간으로 풀어
291㎝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부터
2017년 한국건축가협회상 수상 등

여주를 흐르는 남한강에는 ‘마암’(馬巖)이라 불리는 바위가 있다. 누른 말을 뜻하는 황마(黃馬)와 검은 말을 뜻하는 여마(驪馬)가 이곳에서 솟아났다는 의미에서 말의 바위, 마암이라고 불렀다.
평평한 바위면에 ‘마암’이란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바위 위쪽 누각에서 강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명소가 바로 마암이다. 이규보, 이색, 서거정, 정약용 등 당대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
2016년 개관한 여주박물관 ‘여마관’이 바로 마암이라는 이름의 근원이 되는 검은 말 여마에서 따왔다. 여마관은 검은 말이 솟아난 것처럼 검은 빛을 띤 건물이 강 위에 노출된 모습이다.

여주박물관 건물을 제대로 살피려면 남한강변에서 진입해야 한다. 1997년 개관한 박물관 구관이 강변에 평행하게 배치돼 강쪽에서 바라봤을 때 입구가 정면에 보이는 것과 다르게, 여마관은 강에서 바라보면 입구가 보이지 않는다.
주차장이 강변에 자리잡은 것으로 보아 감춰진 입구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주차한 관람객은 자연히 남한강에 서서 입구는 어디인지 건물을 바라보게 된다. 여주사람들은 남한강의 옛 지명인 ‘여강’으로 부르니 기사에서도 여강이라고 지칭하겠다.
여마관은 여강과 축이 나란하지 않고 비틀어져 있어 강에서 보면 삐죽한 모서리 부분이 노출되는 구조다. 건물 모서리면부터 강을 향한 건물 입면은 검은 색상 유리로 마감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여강을 수놓은 윤슬이 건물에 반사되면 마치 빛나는 검은 돌이 지면에서 툭 하고 솟아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여강에서 솟아난 검은 말, 바로 여마의 모습이다.

강 건너편에서 건물쪽을 바라봤을 때 솟아오르는 역동성은 극적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은 당연히 강 건너편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여주박물관 여마관에는 2개의 수공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앞서 말한 여강이다. 여강 위에 솟아오른 여마의 모습을 구현했고 이를 관찰하려면 강과 건물을 한번에 보아야 한다. 이렇게 건물을 바라보는 시퀀스는 부자연스럽다.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은 강 건너가 아니라 건물이 있는 강변 주차장에 주차하고 건물로 진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마관 1층 건물엔 전면 창 아래 수공간이 조성돼 있다. 건물 입구는 건물 뒤편에 감춰져 있는데 약한 오르막으로 구성된 정원을 걸어가며 건물 앞에 만들어진 수공간을 보고 입구로 진입하게 된다.
주차장에서 정원을 거쳐 천천히 오르며 정면 수공간을 관찰하고 뒤쪽 입구로 진입하는 시퀀스는 ‘강에서 솟아오른 건물’이란 여주박물관의 핵심을 체험하게 해준다.
강변과 축이 틀어져 정면에서 보았을 때 모서리를 노출한 건물 형태, 주차장에서 바로 이어지지 않고 빙 둘러 뒤쪽으로 가야만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입구 형태, 약한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며 건물 앞쪽에 조성된 수공간을 관람하며 검게 빛나는 건물로 들어가는 모든 형태가 철저한 계산 아래 구성된 장면들이다.
이런 시퀀스 덕분에 여주박물관으로 진입하는 과정 속에서 마암과 여마라는 오래된 여주의 이야기들을 자신도 모르게 습득할 수 있다.
뒤쪽에 만들어진 입구로 가면 자연스럽게 구관을 볼 수 있는데, 비록 여마관이 본관으로 쓰이고 있으나 구관도 살펴보라는 작은 배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주박물관 건물이 이처럼 이중으로 ‘수공간’을 조성한 이유는 뭘까. 그 역시도 여주라는 지역의 역사와 관계가 있다.
목은 이색(1328~1396)은 시 ‘여강미회’에서 “천지는 무궁하나 인생은 끝이 있으니 / 초연히 돌아갈 뜻 그 어디로 가야하나 / 여강 한 굽이에 산은 그림 같은데 / 절반은 단청 같고 절반은 시와 같다네”라고 노래했다.
한 굽이 그림 같은 산을 품은 여강에 생활내음이 스민 건 조운(漕運)이 활발해진 여말선초 시기다. 왜구가 출몰하며 해안을 통해 물자 수송이 어려워지자 강을 통한 운반에 눈을 돌리게 된다.
여강은 중부 내륙과 한양을 연결하는 수송로였다. 한강 하류와 서해안의 해산물이 이곳을 통해 충청도와 강원도로 옮겨졌고 강원도의 임산물이 반대로 한강 하류로 이동했다. 상선의 드나듦으로 취락이 발달하기도 했다.
조선은 여강을 조세 수송의 핵심 통로로 사용했다. 한강 수운으로 각 관청이 징수한 조세가 수송되며 수심이 깊고 잔잔한 여강의 입지가 중요한 국가 인프라로 자리잡은 것이었다.
바닥이 모래로 이뤄져 쏘가리와 잉어가 많이 잡혔고, 특히 금잉어는 민물고기 중 최상품질을 자랑했다고 한다. 아직 남아 있는 여주의 민물매운탕집은 바로 이 흔적이기도 하다.
강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은 고장이 여주이기에 여주박물관 역시 역사적 유래와 강의 의미를 담아 수공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식으로 꾸며졌다.
여주박물관 1층에서 전창으로 바라본 풍경은 아름답다. 해가 질 무렵이면 인공 조성된 건물 앞 수공간에 빛나는 윤슬이 깔린다. 그 윤슬과 여강 위에 자연이 만든 윤슬이 겹쳐지며 박물관 내부는 은은한 조명처럼 퍼진 빛으로 가득찬다.


남한강변에는 유명 프랜차이즈부터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카페가 곳곳에 있지만 여주박물관에서 바라본 강의 풍광을 좇아갈 수 있는 곳은 단연코 없다.
박물관 1층에서는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카페도 있어, 저렴한 가격에 최고급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내로라하는 문인들이 왜 여강을 찾았는지 그 이유는 카페에 10분만 앉아 있어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는 평범하다. 여느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계단을 타고 올라가 벽면을 따라 구성된 관람실을 빙 둘러 나오는 식이다. 가운데는 엘리베이터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천장에 뚫린 유리로 약간의 빛이 내려온다.
1층엔 높이가 291㎝에 달하는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비신이 뉘어져 있다. 975년 세운 탑비 비신은 1915년 봄에 무너져 여덟 조각으로 깨졌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돼 오다 2016년 여마관 개관에 맞춰 이곳으로 옮겨졌다.
사람이 새긴 글씨가 빼곡히 수놓인 거대한 비신에는 원종대사 탄생, 출사, 유학과정, 국사 책봉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한다. 화려한 고려 불교 미술을 엿볼 수 있는 거대한 유물이다.
여주박물관은 여강에서 솟아오른 단단한 바위, 마암 그 자체처럼 보인다. 바위 속으로 들어가면 바닥에서 거대한 돌로 만든 탑비 비신이 우리를 맞는다. 비신에서 조금 고개를 돌리면 창밖으론 아름다운 인공, 자연의 수공간이 차례로 펼쳐진다.
결국 여주박물관은 바위와 물의 건물이다. 여주박물관은 2017년 한국건축가협회상을 탔다. 여주시 신륵사길 6-12에 있으며 관람은 무료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