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性)에 의한 동기·유형 분석으로 해답 내놔야

 

2023년 배우자·연인 피의자 192명

여성인권단체 ‘반쪽짜리 통계’ 분노

가정 내 범죄 ‘반의사불벌죄’ 과제

배우자·연인 사이에서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해 동기와 범죄 유형 등을 분석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성인권 단체인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009년부터 언론 보도를 토대로 남편·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피해자 수를 추산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발간하는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를 보면, 전국에서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목숨을 잃은 여성은 2021년 83명, 2022년 86명, 2023년 138명, 지난해 181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경찰청은 지난해 처음으로 전·현 배우자, 연인 등에 의한 살인·살인미수 범죄 관련 통계를 공개했다. 경찰청이 소병훈(민·경기광주시갑)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023년 입건된 살인·살인미수 피의자 778명 중 192명(24.6%)이 전·현 배우자와 연인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 그래픽 참조

그동안 경찰이 살인 범죄 유형을 ‘배우자 등에 의한 존속살해’, ‘아동학대살해’, ‘영아살해’, ‘일반 살인’ 등으로만 구분했다는 점에서 여성인권 단체들은 이 통계를 주목했다.

그러나 이 통계도 가·피해자의 성별이 공개되지 않아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양성평등기본법이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은 인적 통계를 작성할 때 성별마다 처한 상황과 특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성별 구분 통계를 산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친밀한 관계에서의 살인·살인미수 사건은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다수”라며 “성별 간 가·피해 구조를 확인해야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범행의 원인과 특징 등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살인·살인미수 사건들을 살펴보면 가해자가 범행 이전에 폭력·스토킹 범죄 등 ‘선행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4월29일자 6면 보도) 이에 가해자가 선행범죄를 저질렀을 때 피해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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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지난 21일 50대 남성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앞서 1일에도 경기 시흥시에서 이혼한 전 아내를 찾아가 죽인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벌이는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https://www.kyeongin.com/article/1737921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전·현 배우자에 의해 폭행 등을 당했을 경우 법원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에 있는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유대감, 가해자가 처벌받을 경우 겪게 될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가해자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은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김미선 인천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은 “가정폭력 피해자들 중에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은 후에 자신을 찾아올 것을 걱정하고, 자녀와 함께 임시 거처나 보호소에서 불안정하게 지내느니 참고 살겠다고 하는 이가 많다”며 “피해자의 집이나 직장 등 생활공간에 가해자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보호 조치하고, 가정폭력 범죄의 반의사불벌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 각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저지르는 여성 살인에 주목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여성살해(페미사이드·Femicide)죄’를 신설해 페미사이드를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구분했다. 멕시코는 앞서 2022년 형법을 개정해 페미사이드 미수범에 대한 형량을 최대 30년에서 40년으로 늘리기도 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