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 '양동(良洞) 민속마을'이 바로 그런 곳이다.
우리가 아는 경주는 불국사, 첨성대 등 신라 천년의 보물과 보문단지의 경주 월드, 잘 만들어진 자전거 전용도로 정도다. 그러나 경주시내에서 포항쪽으로 10여㎞ 차를 타고 가다보면 도로 오른쪽 지방하천인 기계천 다리위에 양동마을로 가는 큰 표지판이 나온다. 이곳이 지난 연말(12월23일) 문화재청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남해안일대 공룡화석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새로 결정한 곳이다. 양동마을은 신라문화를 벗어나 조선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살아 숨쉬는 한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이기 때문이다.
양동은 경주 손씨(慶州 孫氏)와 여강 이씨(驪江 李氏), 두 가문이 상부상조와 경쟁을 통해 공존과 조화를 도모하면서 유가의 법도와 선비의 기품을 500년동안 면면히 이어온 우리나라에서조차 보기드문 반촌(班村)이다. 양동마을은 경주에서 형산강 줄기를 따라 동북 포항쪽으로 40여리 들어가서 위치한다. 마을은 설창산(雪倉山)을 주봉으로 세줄기로 뻗어내린 구릉에 자리잡았고 마을안에 들어서면 한적한 산촌같은 아늑한 느낌을 준다.
이 마을을 흐르는 형산강은 옛날에는 수량이 많고 수심도 깊어서 포항쪽의 고깃배들이 일상 내왕했기 때문에 해산물의 공급이 불편없이 이뤄졌으나 지금은 수량도 줄고 바닥도 높아져 어선의 내왕 조차 불가능하다 한다. 마을자체는 안강평야에 접해 있으나 서향한 좁은 골안에 다시 남향해서 물자형(勿字形)으로 이뤄진 산골의 산등성이나 골짜기에 고택들이 흩어져 있다. 그 반가들은 모두 산등성이나 중허리에 터를 잡았고 그 주변에 하인들이 거주했던 초가집들이 흩어져 있다.
따라서 마을의 집들은 ㅁ자형을 기본형으로 거꾸로 물(勿)자형으로 뻗은 구릉의 능선이나 중허리에 듬성듬성 배치됐고 능선마다 숲이 우거져 오솔길을 따라 가까이 접근해야만 고가옥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옥들의 구조를 보면 대부분 ㅁ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정자는 ㄱ자형, 서당은 一자형으로 건축규모는 대략 50평내외 방은 10개 내외다. 이들 대규모 고가옥에는 원래 행랑채와 외거노비들이 사는 초가인 가랍집이 3, 4채씩 딸려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가랍집은 안타깝게도 현재 몇채 남아있지 않다.
현재 양동마을에는 가옥 150여채, 정자 15개소, 학당, 영당, 사당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는 보물 3점, 중요민속자료 13점, 지방유형문화재 7점 등 총 23점 외에 비지정문화재라 할 수 있는 고택이 30여채가 넘어 지난 1984년 12월24일 마을 전체가 문화관광부에 의해 민속보존지역(속칭 민속촌)으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양동마을은 15~16세기경 이루어진 한국의 전형적인 양반촌으로 150여채의 전통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어우러져 고색창연함을 자랑한다. 특히 이곳은 조선 중·후기에 걸치는 다양하고도 특색있는 우리나라 전통가옥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한국의 고건축물의 보고로 영국의 찰스황태자도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민속마을 6곳 중에서 문화관광부지정 보존 양반마을은 '안동 하회마을'과 '양동 민속마을' 두 곳 뿐이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양동마을은 1467년 이시애의 난때 공을 세웠던 배민공과 그의 사위이자 유학자인 이언적의 후손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집단촌이라 한다. 특히 이 마을은 역대로 '외손이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고려시대 오태사(吳太師)에서 장태사(蔣太師)로, 조선시대에는 유복하(柳復河)에서 손소(孫昭)로, 다시 이번(李蕃)으로 계속 외손쪽으로 계승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던 옛 고향처럼 한적한 산촌같은 아늑함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경주를 더욱 경주답게 만드는 곳이 바로 이 양동마을인 셈이다. 이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는 것 만으로도 조선시대 고건축물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병헌과 전도연이 열연했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도 등장했던 마을. 여성관객들의 어린시절 향수를 되살려 내기에 충분했던 이 영화는 주 촬영지가 산리초등학교라는 전북 고창의 깊은 산속이었으나 극중 남자주인공인 총각선생님(이병헌 역)의 하숙방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이곳 양동마을의 고색창연한 기와집이다. 단촐하고 소박하면서도 아늑한 느낌을 전하는 이곳은 마을을 찾는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한 곳이다. 그러나 양동마을은 관광지가 아니다. 옛 것으로 자부심이 대단한 이웃들이 살고 있는 현실의 마을이다. 이런 마을을 찾으면 지켜야 할 기본예절을 지키되 쉽게 보기 힘든 우리 전통가옥이니 만큼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곳이다. 양동마을 청년회장 이석진(42·경주시 강동면 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