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황사 응진당 앞에서 돌아서면 가까이에는 호수가, 멀리로는 땅끝마을 너머 푸른 남해가 보인다.
땅끝으로 떠났다. 섬에서 재빠른 화신(花信)이 이미 도달했지만 땅끝은 아무래도 봄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기지다. 서해안고속도로 종점 목포를 빠져나와 해남으로 향하자 남녘땅에 완연한 봄이 펼쳐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목에는 파릇하게 싹이 튼 연록색 채소밭이 눈을 시원하게 적시고 부지런한 농촌 아낙네는 어깨에 부드러운 아침햇살을 받으며 씨를 뿌리고 있었다. 바다가 가까워지자 풍경이 조금씩 변했다. 해남에서 땅끝으로 가는 13번(완도 방면) 국도변에 서면 흙냄새 속에 비릿한 바닷바람이 묻어난다.
새벽 6시 동수원톨게이트를 빠져나가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 해남군 땅끝마을까지는 5시간여. 지난해 12월 완공된 땅끝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자 계기판에는 447㎞가 기록된다. 우리 뇌리에 각인된 '삼천리 금수강산'은 서울에서 땅끝까지 이천리, 다시 서울에서 평양까지 천리를 합한 것이라는 안내판이 인상적이다.
땅끝에 서서 맞는 바람은 훈풍이다. 꼬불꼬불 리아스식 해안과 점점이 흩어진 섬들이 굽이굽이 펼쳐지는 다도해.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땅끝에 와서 먼 바다를 그윽하게 바라보는가 하면, 아이들은 토말비 뒤에 새겨진 '태초에 땅이 생성되었고 인류가 발생하였으니 한겨레를 이루어…'를 읽느라 한창이다.
땅끝마을과 미황사(美黃寺)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국토의 소중함을 재발견한 80년대부터. 한반도의 골격 백두대간(白頭大竿)이 멈춰서고 더이상 발디딜 곳이 없다는 종점이고, 그래서 대륙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출발점이다. 또 해마다 봄이 닿았듯 그 옛날부터 배를 통해 대륙문화가 닿았던 곳이기도 하다. 86년부터 찾아오는 발길이 부쩍 늘어 지금은 우주선 모양의 땅끝전망대, 토말비와 토말탑이 세워졌고 노령산맥의 마지막 줄기인 해발 156.2m의 사자봉 정상에는 봉화대가 복원돼 있다. 맑은 날 사자봉에서는 완도군 노화도와 보길도, 진도와 진도군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조도 거차도 등 섬 20여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땅끝마을의 유명세를 더한 것중 하나는 낙조. 해질무렵 진도를 붉게 물들이며 퍼지는 노을은 '…갈두리 사자봉 땅 끝에 서서길손이여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라는 토말탑 손광은 시인의 시를 실감케 한다.
땅끝에서 10여㎞ 북쪽으로 가면 미황사가 있다. 미황사의 독특함은 말로 하기 어려울 정도다.
기이한 자연과 우아한 절집, 아름다운 사람들이 미황사라는 절의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해발 489m)은 바닷가 산으로는 드물게 우뚝 솟아있고 12㎞에 이르는 기기묘묘한 바위 연봉이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환상을 자아낸다. 굳이 비슷한 것을 들라면 안견의 '몽유도원도'라 할 수 있다. 설악산 천불동이나 공룡계곡이 밝고 웅장 화려하다면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린다는 달마산은 어둡고 기괴한 부분이 있어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황사는 산의 어두운 그늘을 밝혀 주는 절이다.
산에 홀리듯 절을 향하면 입구가 나오는데 입구부터 절까지는 동백나무 숲길이다. 수백년은 됐음직한 동백나무에는 지난 겨울 볕좋을 때 피어 얼어붙은 동백꽃에서부터 이제 갓 봉우리가 터진 선홍색 꽃까지 청록색 숲에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져 있는 것 같다.
절집은 단청을 하지 않아 우아한 자태에 담백함까지 갖췄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대웅전(大雄殿)과 아담한 응진당(應眞堂)은 각각 보물 제947호와 제1183호. 응진당 앞에는 화계를 만들어 감추고 드러냄이 조화롭다. 응진당 앞에서 돌아서면 가까이에는 호수가, 멀리로는 땅끝마을 너머 푸른 남해가 보인다.
이 절은 창건 설화로도 유명하다. 신라 경덕왕 8년(749년) 돌배(石船) 한 척이 홀연 사자포에 닿았는데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돌아서면 가까이 오기를 몇날 며칠 계속했다. 이를 본 의조화상이 정운, 장선 두 사미승과 향도 100명을 데리고 목욕재계를 하고 기도하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안에 들어가 보니 금으로 된 뱃사공과 금함, 60나한, 탱화가 가득 차 있었고 검은 바위를 깨뜨리자 소 한마리가 뛰쳐나와 삽시간에 커다란 소가 됐다. 이날 밤 의조화상 꿈에 금인(金人)이 나타나 우전국(인도) 사람임을 밝히고 “소가 누워 일어나지 않는 곳에 절을 세우라”는 말에 따라 미황사가 지어졌다는 것이다. 미황사의 이름은 소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에서 미를, 금인의 황금빛에서 황을 따와 지어졌다고 한다.
이같은 설화 때문에 미황사는 불교가 중국을 거쳐 북방으로 유입됐다는 설에 대해, 해로를 통한 남방유입설을 입증할 때 거론되는 절이다.
최근 깔끔하게 지은 세심당(洗心堂)은 사찰 수련회를 갖고 있는 청소년들로 늘 북적거린다. 농촌 사찰을 내세우고 있는 이 절은 지역의 문화공간 역할을 톡톡히 한다. 세심당에서는 수련회와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열고 있고 여름·겨울방학에는 초등학생 한문학당, 시월에는 작은 음악회를 연다. 주지 금강스님은 길손들 누구에게나 차를 대접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