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로 가는 한옥마을 남산골·북촌]

남주북병(南酒北餠)이란 말이 있다. 남쪽은 술이 이름났고, 북쪽은 떡이 소문났다는 얘기다. 여기서 남북을 가르는 기준은 청계천이다. 청계천의 북쪽, 궁궐이 옆 동네인 북촌은 고관대작들이 사는 풍족한 동네라 맛있는 떡을 잘 해먹었다. 청계천 남쪽 남산 밑은 빈한한 양반들이 모여 살아 술추렴이 잦았던지, 술 좋은 동네였다. 지금엔 낙원동 떡집 골목이 북촌떡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남촌에서는 술 향기가 그친 지 오래다.

하지만 청계천이 새로운 부활을 했듯이 남촌과 북촌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남촌을 대표하는 곳은 남산골 한옥마을이다. 1998년에 국가기관이 이전하면서, 남산 기슭 필동 일대에 마련된 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남산계곡으로 경관이 수려해서 신선이 산다는 청학동이었다. 지금은 이름도 계곡도 운치도 없어졌지만, 공원같은 한옥마을이 들어서 얼마간이라도 위안을 준다.

산골 한옥마을에는 기품있는 한옥 다섯 채가 있다. 서울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더 이상 연명하기 어려워진 가옥 4채가 이주해왔고, 너무 낡아 이주하기도 어려워진 1채가 복원되어 있다. 전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사니, 이제 한옥이란 존재 자체가 구경거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아궁이나 대들보나 처마라는 말은 따로 설명해줘야 할 까다로운 단어가 되었다.

토요일 오전, 학교 동아리에서 함께 온 학생들이 오위장 김춘영 가옥 가는 길목의 디딜방아 앞에서 선생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해서 먼 바다로 나가면 떨어져 죽는다고 여겼지요. 임금은 하늘이고 신하는 땅이라고 생각했구요. 그래서 민가에서는 둥근 것을 못썼어요. 둥근 기둥은 궁궐에서만 쓰고, 민가에서는 네모난 기둥을 썼는데 특별히 왕이 허락할 때만 둥근 기둥을 썼지요. 그런데 일반 민가에서 유일하게 둥근 게 있었어요. 그게 뭔 줄 아세요?” 인솔한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내게도 생소한 말들이다. 답이 뭘까 궁금했는데, ‘맷돌’이란다.

학생들은 디딜방아를 한번 디뎌보고, 한옥들을 둘러본다. 그러면서 손에 든 보고서에 꼼꼼히 메모한다. 보고서 제목은 '장애인시설 조사 활동지'다. 단순하게 안내판 문구를 적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판단력과 눈썰미가 필요한 보고서였다. 요즘 논술이 강화되었다는데, 그 여파가 느껴졌다.
남산골에서는 다양한 문화행사도 진행된다. 양반 생활을 체험해보는 ‘나도야 양반’,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무료 한방 체험, 서울시 무형문화재 특별시연, 소리공연, 주말 굿판도 벌어진다. 남산골에는 전통 가옥만 있는 게 아니라, 전통 문화도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촌을 대표하는 공간은 북촌한옥마을로 특성화되고 있다. 북촌은 서쪽으로 경복궁, 동쪽으로 창덕궁, 남쪽으로 종묘를 둔 공간이다. 가회동, 재동, 계동, 원서동, 인사동이 이 북촌에 들어간다. 북촌은 궁궐에서 가까워서 오래도록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왔다. 그래서 고층건물이 드물고, 한옥들과 휘어진 골목이 남아 있다.

산책이나 트레킹하는 심정으로 가족들끼리 북촌을 한나절 순례할 만하다. 북촌은 남산골처럼 울타리가 있는 제한된 구역이 아니다. 살림집과 가게가 늘어선 동네인데, 군데군데 쌈지박물관이 있고, 장인들의 작업실이 있어서 볼거리가 많다. 가회박물관에서는 민화 그리기를 할 수 있고, 조일순 전통매듭연구소에서는 매듭과 염색체험을 할 수 있다. 오죽공예관인 언강 죽장전시관이 있고, 한국미술박물관과 북촌문화센터도 있다.

초가에서 슬래브집으로, 한옥에서 시멘트 벽돌집으로, 다세대주택에서 아파트로 우리의 생활 공간은 현대사만큼이나 급변해왔다. 우리는 너무 빨리 버리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러나 남산골과 북촌에는 과거의 궤적과 전통의 향기가 남아있다. 그 궤적과 향기를 좇아가며 자녀들에게 지난 날을 얘기해 줄 수 있는 곳이다.

/허시명 여행작가 (경인일보 프리랜서)·twojob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