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인생의 농담 같은 것이다. 굳이 진지하지 않아도, 필사적이지 않아도 감행할 수 있는 일이다. 공주 영평사(永平寺)의 사찰 체험 행사에 참여했을 때도, 승려들의 자연스런 농담을 들을 수 있었다. 아침 절 마당에서 몸을 푸는 기체조를 하면서, 한 승려는 머리를 ‘호박’으로 묘사했다. 어깨를 이용하여 ‘호박’을 굴리라고 했다. 세수대야처럼 넓은 찻사발에 하얀 연꽃을 풀어놓고, 연꽃의 세계와 불가의 세계를 교차시켜 설명하면서 세상에 이 연, 저 연, 별 연이 다 있다고 했다. 개연도 있고, 밤에 피는 환향연도 있다고 했다. 이 때, ‘연’을 힘주어 발음하면 자연스럽게 농담이 되고 만다.
농담은, 사찰 체험 행사가 일방적이고 건조한 종교체험 행사로 흐르지 않도록 배려한 승려들의 제어장치였다. 사찰 체험 행사는 2002년 외국인들을 겨냥해서 만들었는데, 내국인들의 호응도 좋아서 조계종에서 ‘템플스테이(temple stay) 사업단’을 만들어 활성화시키고 있다. 현재 체험 행사를 진행하는 사찰은 50군데쯤 된다.
4세기 무렵에 불교가 한반도에 도래한 뒤로, 불교는 이 땅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동행해 왔다. 사찰은 전통을 중시 여기고, 세파에 쉽게 휩쓸리지 않아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가장 잘 남아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승려들의 독경소리, 사찰의 건축구조,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 사찰음식 등은 불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것이 되어 있다.
공주 영평사는 20년 짧은 내력을 지녔다. 환성(幻惺) 스님이 자죽염을 구우면서 키워낸 사찰이다. 그래서 음식하고 인연이 깊다. 요즘엔 영평식품 회사를 일주문 밖에 두고서 된장, 고추장, 자죽염, 백련차, 연잎차, 구절초차 등 20가지가 넘는 식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토요일 오후 3시 사찰에 도착하여 옷과 신발을 갈아 신고 발우공양(供養) 예절교육을 받았다. 절집에서 식사하는 것을 공양한다고 말한다. 발우는 부처나 승려가 사용하는 밥그릇을 뜻한다. 차곡차곡 포개지는 4개의 그릇, 수저와 젓가락, 그릇을 받치는 천, 그릇을 묶은 끈으로 이뤄져 있다. 앉아서 식사를 받고 그릇에 들어온 밥과 반찬은 한 톨도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 식사를 시작하면서 ‘오관게’를 낭독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몸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그리고 소리없이, 공양해야 한다.
저녁 공양 시간에 절에서 담은 된장으로 끓인 국이 나왔다. 맛이 부드럽고 깊었다. 좋은 법문이라도 듣는 것처럼 몸이 편안해졌다. 어금니에 씹히는 열무김치 소리가, 마치 서까래라도 내려앉듯이 크게 울렸다. 조용히 조심스럽게 그러나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앉은 자리에서 발우를 닦고 정돈하였다.
저녁 공양이 끝난 뒤에 사찰음식 전문가인 선재 스님의 강연이 이어졌다. 동행한 궁중음식연구원 사람들을 위한 배려였다. 한 시간 반 동안 강연이 이어졌는데,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의 메모장에는 “나물을 씻을 때 흐르는 물에 씻지 않는 이유는, 첫째 벌레가 내려가 죽기 때문에, 둘째 나물이 멍이 들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불가의 정신이 오롯이 담긴 그 말에, 아이도 감동을 했던 것이다. 첫날엔 촛불기원 행사를 가진 뒤에 오후 11시에 잠이 들었다.
이틀째에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침 예불을 드리고, 1시간 동안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을 베껴 쓰고, 기체조를 한 뒤에, 아침 발우 공양을 하고, 주지스님과 백련다회를 가진 뒤에 자죽염 제조장에서 죽염 만드는 과정을 살피고, 뒷산에 올라가 농장에서 표고버섯을 따고 나니 점심 공양시간이 되었다. 공양을 마치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참가한 모든 이들끼리 서로 껴안고 인사를 나누는 회향식을 가졌다.
1박2일 산사체험에 잊고 지낸 많은 것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문을 열면 산이 들어오고, 하늘을 보면 별이 눈 맞추고, 새벽이 오면 새소리 요란하고, 물속을 보면 올챙이들이 팔랑거리고… 산에 들어와 자연을 보고, 절에 들어와 내 마음을 보았다.
◆영평사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간 고속도로~정안IC~공주 방면(10분)~조치원 종촌 방향(2분)~반포 은용리 방향~영평사(총 2시간 정도 소요). 충남 공주군 장기면 산학리.
◆산사 체험 정보=금·토·일 진행, 1박2일 4만원, 2박3일 6만원, 참여 문의:(041) 657-1854, 011-320-8544. 5월 5일 초파일 행사(우리음악 연주회, 백련차시음회, 합장주 만들기, 일천불 그리기 행사 진행), 여름이면 백련꽃차를 만들고 가을이면 구절초 축제를 벌인다.
[공주 영평사 산사체험] 나를 비워가는 여행
입력 2006-04-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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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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