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장리미술관을 찾아가기란 쉽지 않다. 연천군 읍내에서 임진강을 건너 민통선을 향해 한참을 달린 뒤 울퉁불퉁한 비포장 산길 1.1㎞를 더 타고 들어가야 쨍쨍한 햇볕에 벼가 누렇게 익고 있는 논을 코앞에 둔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꾸밈없고 티끌없는 자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 박시동씨(39·조각가·연천군 백학면 석장리)가 이곳을 처음 만난 10여년 전에도 그랬다.
『3년 정도 파묻혀 작업에만 열중할 곳을 물색하고 있었지요. 우연히 이 곳에 들렀는데 맑은 공기와 물 등 인간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작업과 함께 농사짓고 날품도 팔면서 이곳 주민이 됐지요.』
반(半)농군이 돼 살기 시작한 지 5년. 전시공간이 전혀 없고 문화의식도 높지 않지만 가능성은 어느 곳보다 풍부하다는 생각에 문화공간을 구상하게 됐다. 근처에 경순왕릉과 정발장군묘,숭의전,전곡리선사유적 등이 산재해 있고 한탄강이 가까워 문화자산이 풍부한데다 지구 최후의 분단국가를 상징하는 민통선과 접하고 있어 강렬한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또 공동투자한 미술인 선·후배가 나중에 들어올 예정이기 때문에 어차피 조각전시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컸다.
경제적 어려움과 여러가지 힘든 일을 겪기도 했지만 노력은 열매를 맺어 지난 7월16일 정식 미술관은 아니지만 연천의 첫 전시공간으로서 석장리미술관을 공개하는 의미와 함께 DNZ민통선예술제를 연 것.
동료작가 39명이 선뜻 참여해 60여점의 조각과 설치를 1천여평의 잔디밭과 논두렁, 아니면 아예 논 가운데 전시하고 행위예술, 실내악, 풍물이 어우러진 복합문화예술제로 판을 벌였다. 호응은 예상외로 높아 행사당일에만 무려 1천여명이 찾아왔고 조용한 마을이 들썩한 축제분위기를 자아냈다. 수해 이후로 발길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하루평균 30여명이 찾아와 미술품을 감상했다.
『동네분들이 가장 힘이 돼주셨지요. 플래카드를 걸고 길을 정리해주신 것은 물론 돼지를 희사한 분도 있고 음료수와 소주를 내놓은 분들도 많아서 그 덕에 행사를 성대하게 치를 수 있었습니다.』
야외조각전은 11월31일까지 계속 열고 있는데 요즘들어 속상한 때가 많다. 문화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연속에서 조용히 작품을 음미했으면 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 이 먼 곳까지 온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와서 학교숙제용 팸플릿만 구한뒤 공차고 놀다가 쓰레기까지 버리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매달리느라 작업시간이 절대적으로 줄고 자신의 뜻을 오해하는 시선과 말못할 경제적 어려움은 그와 그의 가족만이 겪는 또 다른 고통이다.
『10년을 공들여 지금 출발했습니다. 앞으로 실내미술관도 짓고 뒷산은 예술인촌으로 가꾸고 싶어요. 작게 시작한 이 공간이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인간의 가치를 풀어내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당장은 산과 산을 로프로 연결해 구제품 옷을 너는 「손빨래」(가칭)라는 설치를 구상하고 있고, 내년에 지역의 협조가 이뤄지다면 UN의 후원을 받아 「평화와 문화」를 테마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대대적인 문화행사를 벌여 연천과 백학면을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을 품고 있다. 석장리미술관:(0355)835_2859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
조각가 박시동씨 인터뷰
입력 1999-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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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9-0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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