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문물이 물밀듯 밀려온 지난 1백년 동안 우리 문화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전통문화는 일제침략기를 거쳐 근대화 과정에서 말살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가치 재인식과 함께 복원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다. 또한 삶의 여건이 급격히 변화함에 따른 다양한 가치 인식은 물론 세계문화와 호흡하려는 시도도 활발히 전개됐다. 음악과 미술, 무용, 연극 등 우리가 지난 세기에 겪어온 자취를 더듬어 본다. 〈편집자 주〉
20세기 한국음악은 서양음악의 도입이라는 엄청난 충격 속에서 시작했다. 양악이 첫선을 보인 것은 1885년 4월 기독교 선교사들이 소개한 찬송가이다.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성경과 찬송가로 포교를 하고 이를 가르치기 시작한 데서 비롯돼 이듬해 배재학당에서 창가(唱歌)라는 과목으로 책정되는 등 양악보급에 견인차가 됐다.
또 서양식 군악대 창설 역시 양악 수용의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896년 민영환에 의해 필요성이 역설돼 1901년 독일인 에케르트의 도착과 함께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창작음악이 나타난 시기는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홍영후 현제명 이흥렬 윤극영 조두남 박태준 등이 작곡가 1세대로 활양했다.
서양음악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 창설과 이듬해인 1946년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이 생겨나 체계적 교육이 가능해지면서이다. 이후 각 대학에 음악대학이 설치되고 2세대 작곡가인 강석희 구두회 금수현 나운영 백병동 등이 활약했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70년대부터는 한동일 정경화 등 세계적인 연주가들이 배출돼기 시작했다. 80년대에는 음악에 있어서의 주체성 논쟁도 활발히 전개돼 「민족음악론」「한국음악론」등 진정한 한국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모색이 활발해졌다. 서양종속음악이론을 거부한 3세대 작곡가로는 이건용 유병은 황성호 황준일 등을 꼽을 수 있고 이론쪽에서는 이강숙 김춘미 노동은 백대웅 등이 한국음악학연구회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국악계 최고의 사건으로는 1978년 서울 공간사랑에서 창단공연을 한 사물(꽹과리 북 징 장구)의 등장. 우리 타악의 무대화와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으나 최근에는 비판론도 대두되고 있어 사물놀이에 대한 공과(功過)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미술부문에선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까지 근대로의 전환기를 거쳐 해방이후 현대미술로의 진입이라는 충격을 겪어내면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탐구해왔다.
한국화 부문은 안중식과 조석진이, 양화 부문은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이 이 과도기를 주도했다. 일제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이어 해방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관전이 오랫동안 미술계의 흐름을 대변하고 있지만 해방직후 민족미술을 주창한 좌익미술과 80년대 민중미술이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며 한 시기를 장악하는 등 다양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화단에서는 풍경화가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이상범 변관식 노수현 김은호 허백련 장우성 등이 계보를 이어갔다. 양화는 1910년대 서양화 재료와 기법이 도입된 가운데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고희동에서 시작해 김관호 이종우 나혜석 등과 최초의 근대조각가인 김복진 등에 의해 정착돼 나갔다. 추상미술은 1923년에는 주경이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 「파란」을 선보인 이래 1970년대에 붐을 이뤄 앵포르멜, 기하학적 추상, 실험미술, 모노크롬, 미니멀리즘이 유행했다.
또한 한국미술의 현대화는 달과 항아리 등 한국적 소재를 서양기법으로 그린 김환기에 의해 시도된 이래 유영국 이대원 박래현 박생광 등이 디딤돌 역할을 했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도 활발히 일어 이강소, 민중화가 임옥상, 조덕현 등이 맥을 잇고 있다.
더불어 한국인으로 국제화단을 누빈 작가로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한국화가 이응노 등에 이어 현재 전수천 강익중 이불 등의 활약이 돋보이며 다음세기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연극과 무용부문 역시 지난 1백년은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렸다. 가면극과 판소리 등으로 연희되던 전통극은 1908년 이인직의 신소설 「은세계」를 극화한 신극으로 대체됐다. 이어 1910년대는 이수일과 심순애로 유명한 「장안몽」 등 신파극으로 변모됐고 이때 변사라는 신종직업이 등장했다. 해방 이후 1950년 서울 명동에 극립극장이 건립되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아 서구식의 세련미를 더하게 된다. 1960년대부터는 해외 유명작과 번역극이 유행, 「에쿠우스」「신의 아그네스」「동물원이야기」 등이 붐을 이뤘으며 창작극으로 「산불」(차범석作) 「태」(오태석作)등이 갈채를 받았다.
또한 「아가씨와 건달들」이 대변되는 흥행 뮤지컬, 「칠수와 만수」「황씨연대기」 등 사실주의 연극이 1980년대를 장식했고 1990년
20세기 한국문학계가 걸어온뒤안길
입력 1999-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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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2-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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