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타를 상실한 영국 젊은이들을 발칙하고 저돌적으로 다뤘던 화제작 '쉘로우 그레이브'나 '트레인스포팅'에서 대니 보일 감독은 이 지상에는 '낙원'은 없다고 강변했다. 할리우드에 스카웃돼 처음 만든 '이완 맥그리거의 인질'에서도 하늘나라의 '낙원'장면을 삽입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상의 '낙원'은 보이지 않았다.

대니 보일이 마침내 '낙원'을 찾아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앞세운 '비치'(2월 3일 개봉)에서. 2월 11일 미국개봉에 앞서 이례적으로 한국에서 먼저 선보이는 '비치'는 '낙원'을 매개로 모험과 로맨스가 펼쳐지는 어드벤처 무비. 새로운 경험과 모험을 찾아 태국으로 여행온 미국청년 리차드는 미지의 섬이 그려진 지도를 운명적으로 손에 넣게된다. “가자! 미지의 세계로”. 눈부신 하늘과 바다 그리고 이미 수십명의 남녀들이 반문명 공동체를 구성한 섬은 외형적으로는 분명 낙원의 그것이다.

인류의 타락은, 성서에 따르면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과 때를 같이한다. '비치'에서 타락한 세상을 등진 '청춘'들은 '아담'과 '이브'들이고 '섬'은 또 다른 '에덴'이다. 그러나 '섬'에도 '뱀'은 있다. 그것은 대마초를 키우는 무장 원주민들과의 위태로운 동거와 섬을 자신들만의 은밀한 영역으로 지키려는 욕구가 빛어낸 폭력이다.

이 세상에는 더이상 공간으로서의 '에덴'은 없다. 그럼 대니 보일 감독이 찾은 낙원은? 폭력의 한가운데 서서 '낙원'의 허상을 먼저 체득하는 리차드는 끝부분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스님의 선문답같은 대사를 내뱉는다. “당신이 낙원이라고 느끼면 바로 그 곳이 낙원이다”. 할리우드 두번째 영화를 막끝낸 영국인 대니 보일은 아이러니하게도 '낙원'을 오리엔트적인 '마음속'에서 찾아낸 셈이다. 불교는 '열반'을 천국과 같은 어떤 것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해탈한 마음의 심리적 상태라고 하지 않았는가.

'낙원'을 들먹인다고 해서 영화 자체가 현학적이거나 심각한건 결코 아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낙원에 대한 단상(斷想)'을 모험 로맨스 갈등 해피엔딩이라는 할리우드 오락영화의 틀속에 섞어냈다. 중간에 전자게임 장면을 삽입하는등 예전처럼 창조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지만 '트레인스포팅'등에 비하면 무척 얌전(?)한 편이다. 영국시절 대니 보일을 추종하는 이들이라면 할리우드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다고 푸념할 정도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여전히 수많은 여성팬들의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金淳基·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