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카데미 화제작중에는 유달리 '정의' '진실' '인권' '인간'등을 얘기하는 휴머니즘 영화가 많이 눈에 띈다. 최우수작품상 후보작중에는 '그린 마일', '인사이더'및 '더 사이더 하우스 룰스'라는 작품들이 그렇다. 힐라리 스웽크가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소년은 울지 않는다'(11일 개봉), 덴젤 워싱턴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허리케인 카터'(18일 개봉) 역시 마찬가지. 실화를 토대로 한 두 편은 기교보다는 드라마의 힘으로 밀어부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최첨단 테크놀로지 '타이타닉'에 찬사를 보냈던 아카데미 관계자들이 새천년에는 휴머니스트가 되기로 작정할 걸까!
◇소년은 울지 않는다=소년이 울지 않으면 소녀도 울지 않는다. 적어도 영화에서는 그렇다. 영화의 주인공이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여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 이거나 둘다 아닐 수도 있기때문이다. 작은 도시에 사는 브랜던(힐라리 스웽크)은 소녀라하기에는 성숙한 여자. 절도혐의로 수배를 받고 있던 그는 경찰의 눈을 속이려고 남장을 한다.
흔히 장난삼아, 또는 심심해서 한 일이 삶을 바꿔놓는 큰 사건으로 발전하듯이 '남장'은 브랜던의 삶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티나에게 '남성'의 '성'은 '여성'의 '성'에 원초적으로 씌워진 사회적 구속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큰 힘을 부여한다. 현실이 그렇듯이. 남성 브랜던은 여성 브랜던때는 할 수 없었던 삶의 열정을 품게되고 '라나'라는 여자친구도 갖게된다. 물론 '성 정체성'의 혼란에도 빠진다.
하지만 문제는 브렌덴의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다. 질투에 사로잡힌 라나의 남자친구 존이 브렌덴을 비웃으며 강간까지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존은 '레즈비언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 '여성에 대한 남성의 본능적 우월의식'등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가두는 사회적, 남성적 코드에 가깝다. 대신 브랜던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사랑을 잃지않는 건강한 라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브렌덴은 존에게 살해당하는 순간 결코 울지 않는다. 라나가 전해준 삶의 의미, 숭고한 사랑의 가치등은 죽음보다 우월한 것이다. 왜 우리는 라나처럼 인간의 껍데기가 아닌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는 걸까! 별 꾸밈없이 존재하는 사실을 차곡차곡 복사한 탓에 전체적인 흐름은 밋밋하지만 인간성에 대한 고찰과 힘이 담겨진 드라마 자체는 큰 미덕이다.
◇허리케인 카터=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아시아 정책이 증명하듯이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중적이라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영화쪽에서는 '흑백문제'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는 '말콤 X'등을 통해 '인종차별', 즉 인권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켜 왔다. 하지만 미국내 현실은---. 우리역시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긴 마찬가지지만.
1966년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의 한 술집에서 백인 세명이 살해되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흑인을 남달리 증오하는 페스카 형사는 목격자 진술과 증거등을 조작, 복서인 루빈(덴젤 위싱턴)에게 살인죄를 덮어 씌운다. 영화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루빈 허리케인 카터'의 투쟁을 휴머니즘적 시각에서 이어나간다.
루빈의 고단한 삶은 흑인 대부분이 처한 현실과 닮은 꼴이다. 11살때 흑인소년을 성추행하려는 백인 노인을 칼로 찌른 루빈은 페스카에 의해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던 루빈은 자신의 온 몸을 무기로 만든뒤 복서로서 승승장구하다 다시한번 페스카의 마수에 걸려든 것이다. 영화에서 페스카는 흑인 인권에 대해 무관심한 백인사회의 일반 정서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영화는 또한 많은 백인 저명인사들이 구명운동에 뛰어들지만 모두 중도하차했다고 얘기한다. 22년동안 인생을 저당잡혔던 루빈이 마침내 세상밖으로 나올때 같이 있었던 이들은 캐나다 환경모임의 청년들과 흑인소년이다. 오히려 루빈을 구원한건 루빈의 굴하지 않는 정신이다. '지붕위의 바이올린'등으로 잘 알려진 노만 주이슨 감독은 '증오가 날 가뒀지만 사랑이 날 자유롭게 했다'는 루빈의 드라마를 힘차게 밀고나가며 '인권'에 관한 울림을 던진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
휴머니즘 영화 "허리케인 카터"
입력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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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3-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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