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할리우드는 1,2차 세계대전의 '전쟁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양산했다. 그 유명한 '카사블랑카'에서부터 '애수' '무기여 잘있거라' '소피의 선택' '하노버 스트리트', 그리고 최근의 '잉글리쉬 페이션트'까지.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지금도 사랑받는 수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죽음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전쟁속에서의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극적이지 않는가. 닐 조단이 연출하고 랄프 파인즈와 줄리안 무어가 등장하는 99년판 '애수'는 2차대전을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다.

오래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을 문득 다시 접했을때 전신을 싸고도는 묘한 기분처럼 '애수'는 '카사블랑카'류의 애절한 멜로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 감흥을 불러일으킨만 하다. 1939년 런던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소설가 모리스와 정부 고위관료 헨리의 아내 사라간의 비극적인 사랑이다. 그러고보니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도, '하노버 스트리트'의 해리슨 포드도,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랄프 파인즈도 모두 유부녀를 사랑했다.

전쟁에다 공개적이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사랑, 그리고 병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라까지 중첩된 '애수'는 무엇보다 극적이다. 그러나 '애수'는 극적인 스토리로 호들갑떨지는 않는다. 영화는 사라의 죽음, 불륜등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사랑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그것은 '질투'다. “'질투는 끔찍한 거야' '질투는 진정한 사랑의 표시다' '질투와 욕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사라가 내뱉는 “그는 질투로 날 죽이고, 당신은 사랑으로 날 죽인다”는 영화 그 자체다. 질투를 극복해낸 헨리는 친구와 사랑에 빠진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헨리는 아내를 그렇게 사랑한다. 반대로 모리스의 사랑은 집착에 가깝다. 그는 사라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헨리는 물론 사라의 살같을 샅샅이 입맞춤하는 스타킹까지도 질투한다. '질투”는 사랑을 더욱더 정열적으로 끌고가기도 하지만 사랑을 파괴하는 의심을 낳기도 한다.

“다시 만날 수 없어도 사랑이 끝나는건 아니에요/보지 않아도 평생을 사랑할 수 있어요/그것이 진짜 사랑이에요.” 그러나 모리스는 사라을 빼았아간 신마저 질투한다. 동질의 영화중 이처럼 '질투'에 집착한 작품은 없었다.

영국 소설가 그래함 그린의 자전적 소설을 영상으로 옮겼다. 닐 조던 감독은 모리스와 사라가 2년동안 헤어지게 된 이유를 추리기법으로 전개시키기도 하지만 시적인 대사와 차분하고 정갈한 그림을 더 우선했다. '크라잉 게임”등으로 잘 알려진 닐 조던 감독이 탈사회적, 탈정치적인 고품격 멜로 드라마를 연출했다는게 의외다. 확실한 것은 사랑하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있는 세상 모든 것들을 한번쯤(모리스는 쉼없이 했다) 질투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사랑을 의심해보라는 것이다. 22일 개봉. /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