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수원 국제음악제 총평

안드레아 보첼리, 정명훈, 조수미로 대변된 제2회 수원국제음악제가 18일 밤 '아시아 7인의 음악인들' 연주회를 끝으로 폐막했다. 15일 개막연주회로 시작해 하루 건너 17일 야외음악회, 18일 실내악연주회 등 3회의 연주회로 꾸며진 음악제는 명암이 엇갈리는 잔치였다.

17일 밤 수원야외음악당에서 열린 보첼리·정명훈·조수미의 콘서트가 집중부각되는 바람에,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었던 전후 연주회들이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점은 관객호응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나 17일은 예상인원 8천여명을 채웠으나 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15일·18일 공연은 1천8백석의 좌석을 다 채우지도 못했고, 유료관객은 800~1천명에 그친 부진을 보였다.

루마니아 크루즈 나포카시(市) 교향악단 지휘자인 에밀 시몬의 여유있는 지휘가 돋보인 개막연주회는 동유럽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빠르게 휘몰아치기보다 곡의 의미 전달에 비중을 두고 연주를 이끌어가는 여유와 동유럽 특유의 장중함이 느껴졌다. 이날 후반부를 장식한 소프라노 김수정, 알토 장현주, 테너 최승원, 바리톤 최현수 등 4명의 독창자에 대한 관객의 평가는 여성 성악인에 훨씬 좋았다. 김수정은 기교·성량·무대매너 등에서 한창 물이 올랐고, 묵직한 음성의 장현주는 안정감으로 중심을 잡아줬다는 호평이 나왔다.

17일밤 수원야외음악당 연주회는 세계적 스타를 만난다는 설렘을 안고 온 인파들이 잔디밭을 메운 가운데 성황리에 진행됐다. 처음 내한한 맹인테너 안드레아 보첼리는 검정 턱시도 차림으로 지휘자 정명훈과 함께 무대에 올라 '청아한 아이다' '나의 애타는 마음은' 등 아리아와 듀엣곡을 열창해 환호를 받았다. 또한명의 스타 조수미는 화려한 의상과 세련된 무대 매너로 관중을 사로잡으며 '그리운 목소리가 날 부르고 있네' 등을 선사했다. 보첼리는 연주 중간중간 조수미와 가벼운 포옹·키스를 하는 제스처로 연주에 대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18일밤 경기도문화예술회관의 마지막 연주회는 조영창의 따스하면서도 격정적인 첼로 연주와 일본인 다이신 카시모토의 섬세하고 유려한 바이올린 소리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정명훈과 함께 쇤베르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팬터지'를 연주하기도 한 다이신 카시모토는 바이올린의 날카롭고 이지적인 맛보다 명주실같은 미려한 선율미로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이같은 내용에도 불구, 수원국제음악제는 몇 가지 개운찮은 여운을 남겼다. 우선 교체된 연주자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 박정원과 김수정의 교체에 대해 아무 설명도 없었고, 보첼리와 듀엣으로 2곡 등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한 소프라노 이세이는 팸플릿에 소개조차 안돼 지나치게 홀대했다는 비난을 샀다. 디테일한 부분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서비스는 행사의 품격을 높이는 지름길이다.

또 음악제를 관통하는 '주제'나 '정신'이 없는 것은 가장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다. 특별한 주제의식도, 음악제를 통해 구현하려는 정신적 가치도 없어 마치 화려한 백화점 디스플레이처럼 공허했다는 일부의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2002월드컵 문화축전에 위한 준비라고만 치부하지 말고 수원문화계와 국내 음악계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

▲평론-문일근(음악평론가)

지난 17일 수원 야외음악당에서는 2000년 수원 국제음악제 둘째날 연주가 있었다.

이날 연주는 많은 점에서 한국 음악계의 위상을 높인 음악회였다. 그것은 청중과 음악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야외음악회가 갖는 문제점의 극복방안을 제시했고 음악가와 청중, 그리고 탁 트인 드넓은 공간이 갖는 공허감을 어떻게 하면 해소시킬수 있나 하는 점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획의 면밀한 주도가 음악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었다.

이날 음악회가 성공적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은 물론 수원시민의 성숙한 관람문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수미와 보첼리, 그리고 정명훈의 만남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성공적일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 그러나 계몽사회 이후 증대된 청중의 역할을 생각하면 이날 연주는 성숙된 시민문화 의식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셈이다.

야외와 클래식음악은 바람직한 관계는 아니지만 현대문화가 제한된 공간에서의 역할만으로는 다양화하고 대중화한 청중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리고 청중에게 외면당한 예술은 그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되는게 현대다. 이날 연주는 이런 난제들을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 그런 점에서 조수미와 보첼리의 만남은 상호 음악적 만족도를 청중과 공유한 것이었다.

조수미의 음악은 한껏 세련되고 기교적으로 완별할 정도로 성숙되어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