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좌익 2세' 작가들은 왜 문학을 택했을까. 그리고 그들은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이 15일 5개항의 공동선언문을 채택함으로써 분단 55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온 냉전의 틀이 깨지는 전기를 마련했다. 분단과 전쟁 와중에서 좌익 아버지를 둔 문인들이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감회는 남다를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분단이 낳은 비극적 역사의 후예들'이었던 셈이다. 예컨대, 이문구.김원일.김성동.이문열 씨 등 남한의 대표적 작가의 삶과 의식을 살펴보면 이들이 왜문학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이들 작가는 좌익 아버지를 둔 이유로 연좌제 족쇄가 채워져 정상적 삶을 포기하고 탈출구로 문학을 선택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결정한이데올로기 문제를 문학으로 추구해보고 싶다는 예술적 욕망을 가졌다.

이문구씨와 김성동씨 부친은 한국전쟁의 국군후퇴 때 우익의 손에 총살당했다.

반면 김원일씨와 이문열씨의 부친은 9.28 서울수복 이후 인민군 퇴각 때 단신 월북했다. 이들이 남긴 아내와 자식들의 삶이 어떠했는가는 불문가지이다.

이문구씨의 경우 네 작가 중 가장 큰 고통을 겪었다. 남로당 보령군 총책을 맡은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곧바로 예비검속돼 치안기관에 의해 살해됐다. 그뿐 아니라 둘째와 셋째형도 비극을 당해 집안 자체가 풍비박산됐다.

고향 대천에서 겨우 중학교를 마친 그는 무작정 상경해 떠돌이 행상, 공사판 노동자 등을 전전하다 67년 스승인 소설가 김동리씨의 주선으로 ≪월간문학≫ 편집장이 되면서 구원자이자 도피처인 문학을 만났다.

장편 <노을> 로 '빨갱이 자식'의 은폐된 자의식과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처음으로 한국문단에 제기한 김원일씨 역시 좌익에 가담한 아버지가 월북하면서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 멸시를 감내해야 했다.

김씨는 소년시절 생활고에 시달리다 못해 빨리 늙거나 죽고 싶다는 감정에 늘사로잡혀 있었다. 견디기 힘든 염세증과 자살충동에 시달린 그는 당면한 문제에 정면으로 대들기로 하고 <겨울골짜기> 등의 역작을 일궈냈다.

김성동씨의 부친도 사회주의 사상에 몰입했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대덕에서 2천여명의 사상범과 함께 처형됐다. 큰삼촌은 우익에 희생됐고, 외삼촌은 좌익에학살당해 집안은 완전히 몰락했다.

졸업장은 초등학교 것이 고작인 그는 열아홉살 되던 해 불문에 들어 승려로 살아가다가 자의식 속에 가둬둔 아버지를 더 넓은 역사의 지평 위에 자리매김해야겠다며 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80년 본격전업작가로 나섰다.

울퉁불퉁한 삶을 살아오기는 이문열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제도권 교육의 혜택과 상관없이 독학과 검정고시로 필요학력의 대부분을 얻어냈고, 서울사대도 1년을마치고 중퇴했다. 연좌제가 공식 사라진 82년까지 그와 그 가족 곁에는 항상 전담대공형사가 따라다녔다.

이들 네 작가는 삶의 과정이 엇비슷하고 그 근원이 사회주의자인 아버지의 죽음이나 월북이라는 점에서 일치하지만 작품이 지닌 개성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띠고 있다. 즉 체험의 유사성이 작품의 동질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이문구씨를 예로 들면 다른 세 작가와 달리 아버지의 삶을 직접 작품소재로 삼는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이데올로기 대립을 본격적으로 다룬 작품도 찾기 어렵다.

남은 가족의 고생스런 후일담도 안으로 삭일뿐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잘 알려진 <관촌수필> 은 아버지 아닌 할아버지를 주로 그렸고, <해벽> <장한몽> <우리 동네> 등에서도 60,70년대 민중의 핍진한 삶을 형상화할뿐 분단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작품은 없다. 아버지에 대해 분명한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반면 김성동씨는 <엄마나 개구리> <눈 오는 밤> <비 내리는 아침> 등의 단편을통해 유소년기에 겪었던 전쟁과 분단의 비참한 현실을 서정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분단문제의 소설화를 정면으로 시도했다.

특히 좌익과 그 가족이 처절한 피해자로 등장한 데 비해 우익은 철저한 가해자로 그려진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네 작가 중 아버지의 이념과 선택을 가장긍정적으로 해석해 그 정당성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는 세 작가에 비해 '검열'로 대표되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제동을가장 심하게 받아야 했다. 아버지와 그 시대의 삶을 그린 장편 <풍적> 을 연재하다가내용이 문제가 돼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김원일씨도 등단 초기부터 분단과 이념 문제에 매달리며 분단문학의 한 전형을제시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광기의 폭력이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