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씨의 신작 소설집「두물머리」(민음사)가운데 중편소설 <진홍글씨> 는 "내 이마에 새겨진 'A'는 '간음(aduitary)'의 머릿글자 'A'가 아니라 '아마존(amazone)'의 'A'이다" 라는 말로 서두를 연다.

아마존은 '젖이 없는 여인들' 이라는 뜻. 활을 쏠 때 시위에 걸린다고 오른쪽 유방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평소 지나칠 정도로 성평등주의를 주장하고 몸소 실천하는 주인공 남편에 대한 미담으로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한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는 그 남편 역시 여느 남편들과 똑같은 한 마리 '수컷'임을 드러낸다.

"사랑하라. 이것은 딸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싸워라. 이것은 딸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한참 이문열 씨의 「선택」이 페미니즘 논쟁에 휘말려 있을 때 발표된 이 소설은 다분히 「선택」을 의식한 작품이다. 그래서 전달하려는 메시지 역시 이문열 씨 그것과는 정반대다.

그는 이 소설에서 남성의 종 노릇을 거절하고 무리지어 여성만의 모듬살이를 꾸몄던 아마존의 고대여인국 여전사들처럼 여성들에게 자유를 위해 싸울 것을 권한다.
77년 신춘문예 단편 소설부문에 <하얀 헬리콥터> 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데뷔한 이윤기 씨는 그동안 소설보다 번역쪽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그런 탓에 움베르토에코의 「장미의 이름」 등 무려 2백여권에 달하는 영미문학과 인문학을 번역해, 번
역가로서는 1인자로 꼽히고 있다.

그는 또 지난 98년에는 <숨은 그림 찾기1-직선과 곡선> 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해 소설가로서 역량을 과시한 바도 있다.
이번에 그가 펴낸 신작 소설집 「두물머리」는 97년부터 최근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13편의 중단편 소설을 모은 것이다.
여태껏 작품에서 보여준 것처럼 그는 이 소설집에서 한층 더 깊어진 인간에 대한 넉넉한 시선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삶의 본질 탐색'이라는 주제 의식을 살려냈다.
'종교사'와 '비교문화'를 공부했던 저자의 해박한 인문학적 교양과 오랜 미국생활 체험 그리고 특유의 시원스런 남성적 필체가 뒷받침하고 있다.

이 소설집의 표제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어름' 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 '양수리'의 또다른 이름이다.
미국에 살고 있던 큰 아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늙은 아버지에게 감추기위해 둘째아들은 전력을 다하지만 사실은 오래전에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다만 모른 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는 내용의 <두물머리> 는 특히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두물머리'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기도 하지만 속깊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을 뜻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