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정신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던 화가.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이 무료병동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지만 지금은 신화가 돼버린 인물.

평전 몇 권과 두어 차례 대규모 회고전을 거치면서 이중섭(1916~1956)은 생전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로 군림했다. 손색없이 드라마틱한 생애는 영화와 연극, TV드라마로 만들어져 미술에 문외한이라도 그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다. 그래선지 미술사연구가 최석태씨는 세상을 향해 또 한 권의 '이중섭 평전'(돌베개刊)을 내놓으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이중섭은 우리 시대에 그토록 사랑받는가?”

저자는 '흰소의 화가, 그 절망과 순수의 자화상'라고 부제를 단 이 책에서 냉대와 무관심에 이어 다소 느닷없이 신화적 존재가 돼버린 이중섭의 온전한 면모를 찾아나선다. 이중섭의 남아있는 그림과 화집, 연구서와 평전, 논문, 전시평, 회고글, 인터뷰를 통해 들은 생생한 증언 등을 총망라해 길잡이로 삼았다.

신화라는 빛에 가려 간과된 이중섭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하는 저자의 관점은 우리 근대미술사에서 이중섭이 성취해낸 것에 다름아니다. 우선 이중섭의 자주성과 우리 것에 바탕한 새로운 표현. 일제강점 말기에도 변함없이 한글 서명을 했고, 양화 도입기에 활동했음에도 중간색조의 두툼한 유화는 한국적 정서를 대변한다. 일본유학에도 불구하고 섬약,귀족적인 화풍 대신 소와 까마귀 그림에서 보듯 민예적 조형의식을 갖고 있었다.

또 엽서와 편지에서 전통적 서예문화를 계승코자 한 이중섭의 예술적 역량을 읽어낸다. 엽서의 작은 면에조차 거침없는 그어댄 필치에서 사의(寫意)적 속필을 보아낸다. 실제로 이중섭은 편지봉투의 주소글씨도 마음에 들때까지 파장을 내가며 적었다고 한다. 소재 면에서도 아이와 소, 봉황과 복숭아나무, 까마귀와 닭 등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 바탕은 고구려벽화, 고려청자, 분청사기, 추사체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저자가 본 이중섭의 생애 역시 세간의 이미지처럼 현대사의 질곡속에서 신음하다 간, 못다핀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시대와 사회의 현실을 실감하면서 살았고, 그 체험과 상황을 여실히 표현하고 그릴 줄 알았으며, 혼돈의 시대를 '보람차게 살았다'고 해도 될만큼 치열했다고 보고 있다.

책은 그동안 소홀히 다뤄졌던 일본에서의 활동과 서양화가 루오의 영향, 젊은시절 애인에게 보낸 100여장의 엽서그림을 통해 본 습작과정, 41년 일본에서 결성된 민족미술단체 '조선신미술가협회'에서의 활동 등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어 새롭다. 295쪽, 1만5천원.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