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몸의 힘으로 국토를 주유하는 일을 김훈씨(52·시사저널 편집국장)는 이렇게 말했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사계절이 한 번 순환하는 동안 비지땀을 흘리며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고, 바다에 닿아 본 우리 땅은 어떠했을까.
그동안 간간이 종적이 보도됐던 자전거 국토장정의 온전한 기록, '자전거 여행'(생각의나무刊)이 최근 발간됐다.
여행은 가을에 출발했지만 책은 우리 땅에 봄이 처음 닿는 남도의 바닷가 여수 돌산도 향일암에서 시작한다. 꽃피는 해안선에서 동백꽃의 정서를 통해 탈속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를 더듬는다. 그리고 육지쪽으로 바퀴를 돌려 남해안 경작지로 페달을 밟으며 봄 흙의 헐거움과 새싹에서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순리를 생각한다.
그렇게 북상해 닿은 지점은 만경강. 환경단체들이 간척사업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 곳에서 작가는 '우주의 관능으로 가득한 밀물의 서해'를, 뻘을 먹고 사는 게와 물을 먹고 사는 조개 그리고 게를 잡아먹고 사는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먹고 사는 새를 본다. 또 바다와 햇볕으로 향기로운 소금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만나고 만경강 하구 갯벌에 도착한다. 도착해 수많은 점들처럼 날아다니는 도요새를 본다. 작가는 이 철새떼에게서 '풍문처럼 와서 풍문처럼 가지만, 그들의 날아가는 생애는 처절한 싸움의 일생'을 본다.
만경강은 그동안 수많은 곳을 다녔을 작자에게 우리 땅의 미학과 정서의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작가는 이 책을 만경강에 바치며 특유의 감성으로 이렇게 썼다. '너의 빈자리를/너라고 부르며//건널 수 없는/저녁 썰물의 갯벌//만경강에 바친다'
1년의 기간 속에서 전라도와 충청도는물론 도산서원과 하회마을이 있는 안동, 경기 감포, 문경새재, 태백산맥까지 그리고 섬진강 어귀만큼 소중한 삶의 큰 자리 한강과 여의도도 빠트리지 않았다.
작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출신으로 진한 문학적 감정를 표출하는 글로 이름을 날렸다. '풍경과 상처'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 등 4권의 책을 썼다. 김훈 특유의 문체와 수사가 매력이긴 하지만 소개된 곳들이 너무 익숙한 곳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프리랜서 사진작가 이강빈씨가 동행해 사진에세이로 봐도 손색없는 컬러도판이 함께 수록됐다. 327쪽, 9천원.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
페달밟으며 터득한 순리
입력 2000-08-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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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1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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