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작가 한수산(56) 씨가 피로 물든 한국 천주교의 순교 현장을 일일이 답사하며 순례기를 책으로 엮어냈다.

생활성서사에서 펴낸 「길에서 살고 길에서 죽다」는 70년대 감성의 소설로 이름날리던 그가 독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거룩한 외도'의 증표다.

1981년 필화사건으로 군 정보기관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겪은 그는 망가진 몸과마음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낭인생활을 하다가 1989년 백두산 천지에서 '나환자의 아버지'로 불렸던 고 이경재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주님의 종'이 될 것을 맹세했다.

한수산 씨는 천주교 신자인 아내를 만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면서도 두번의 예비신자 과정에서 도중하차한 '세례 삼수생'. 그러던 중 백두산으로 향하는 밤기차 안에서 운명적으로 이경재 신부 일행을 만나 즉석에서 교리교육을 받고는 요한크리소스토모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는 98년 5월 이경재 신부의 삼우제를 마치고 김대건 성인이 소년 시절을 보낸인근의 골배마실에 들렀다가 백두산에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순교자의 길을 따라걷기로 결심한다. 이때부터 성지 순례에 나선 그는 월간지 「생활성서」에 '순교자의 길을 따라'란 제목으로 매달 연재를 해왔다. 이 책은 2000년 9월호까지 2년 분량의 24편을 묶은 것이다.

한국 최대의 순교성지 서울 서소문을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탄생성지 솔뫼, 서울 절두산 순교성지, 무명 순교자의 묘역인 충남 해미읍성, 최양업 신부의 사목성지인 충북 배티, 경기도 송추의 황사영 묘, 한국 최초의 순교터 전주 전동성당 등에대한 역사와 현재 모습, 찾아가는 길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한 순교지 안내서는 아니다. 기도와 묵상으로 풀어낸 신앙고백록이자 특유의 유려한 문체가 살아숨쉬는 문학작품이다.

그는 책 들머리에서 연재를 시작할 때의 기도를 소개했다. "이제 내가 찾아가는그 어느 곳에선가 띄우는 글을 통해 떠남의 걸음마다 내 믿음에도 벽돌이 하나씩 쌓이고 그것이 이 글을 읽어 주실 여러분에게 작은 가루로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그는 또 어느 성지에서 묵상하며 이런 소회를 털어놓았다. "흘러오는 강물이나흘러가는 강물이나 같은 강물이다. 그렇다. 흘러와서 흘러가는 강물이 무엇이 다르랴만 우리는 그것을 자신의 자리에 따라 구분지어 말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강물은 하나다. 다만 흐를 뿐이다. 역사도 그럴 것이다. 피로 얼룩진 박해의 역사는어느날 그 한방울 한방울이 영광의 씨앗이 되었다."

그는 요즘의 세태에 대한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는다. 경기도 골배마실 성지 안에서 술을 마시며 화투를 치는 버릇없는 중년 남자들이나 황사영 묘소와 배티 성지주변을 진동하는 고기굽는 냄새는 그의 기도로도 속죄될 수 없는 순교자에 대한 불경이고 하느님에 대한 죄악이라는 것이다.

그의 순례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천주교 성지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그가 찾아갈 곳은 무궁무진하다. 생활성서사는 한권 분량의 연재가끝나는 대로 후속편을 계속 펴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