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남북 교류의 물꼬가 터지고 한민족이 하나될 날을 구체적 가능성으로 기다릴 수 있게 된 해. 그러나 천년 세월의 문턱을 넘은 2000년대의 길목에서 한 시인은 묻는다. 민초들의 삶의 본질은 변했는가?
수원의 용환신 시인(51)이 여전히 팍팍한 삶에 대해, 그 연원을 거슬러 추적한 장편서사시 '겨울꽃'(모아드림刊)을 펴냈다. 만석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시는 함경도 길주 최갑부네 상머슴 돌석에서 시작해 그의 아들 만석과 손자 광천으로 이어지는 3대의 가족 수난사다.
시는 춥고 어두운 일제시대에서 시작한다. 핍박받는 민중의 삶과 그 삶이 한번 더 처참하게 짓밟힌 3·1운동 제암리사건, 해방, 미군정의 진실과 제주도 4·3사건, 삶을 유린한 이념의 대립…만석일가는 그 세월의 피흘림과 긴장을 한치도 피해가지 못한다. 만석 일가는 일제 폭압을 피해 함경도 두류산을 떠나 경기도로 들어오지만 한반도의 허리가 꺾이는 6·25를 겪으면서 수원 광교산을 넘는다. 시는 이렇게 또 다른 역사의 광풍과 대면하기 위해 그들이 나서는 데서 일단락되고 있다.
용 시인은 시를 이끌어가는 만석일가에 대해 “남달리 특별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대 시대의 이름없는 백성들, 민중들의 보편적인 삶 그것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시인이 무려 15년 동안 이 시에 매달린 것은 민중적 삶의 보편성과 그 삶이 대대로 이어지면서 생명력의 강렬한 빛을 뿜기 때문이 아닐까. 시인은 이를 “신화가 아닌 역사, 사실 속에서 이름 없이 스러져간 그들에 의해 견디고 지켜졌던 불꽃같은 혼에 대한 믿음”이라고 표현했다.
유장한 물줄기 같은 긴 호흡으로 오늘의 삶의 자리까지를 형상화하고 있는 시는 민초의 삶과 닮은 야생화와 나무 이름이 무척 많다. 동이초 애기싱아 꽃금매화 멧참꽃 두메꼬리풀 조밥나무 두메분취 나리잔대 등. 시인의 시와 민중에 대한 사랑도 해마다 순이 돋고 꽃이 피는 이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장편서사시를 이끄는 1장의 서두는 이렇게 시작한다. '꽃은 저절로 피지 않는다'. /柳周善기자·j sun@kyeongin.com
수원 용환신시인 '겨울꽃' 펴내
입력 2000-11-02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0-11-02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
-
투표종료 2024-11-18 종료
경기도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역점사업이자 도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온 경기국제공항 건설 후보지를 '화성시·평택시·이천시'로 발표했습니다. 어디에 건설되길 바라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