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 애니메이션 걸작으로 우리 나라에 이미 소개된 '월레스 & 그로밋'때도 그랬지만 '진흙으로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만들까' 생각하면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확실히 놀랍다. '월레스 & 그로밋'을 만든 영국 아트만사와 할리우드 드림웍스가 손잡고 내놓은 '치킨 런'(16일 개봉)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몽상가 아저씨 월레스와 영리한 강아지 그로밋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월레스 & 그로밋'보다 '치킨 런'은 캐릭터 가지수가 훨씬 많아졌다. 암탉 진저는 포로수용소같은 양계장에서 매일 매일 알을 낳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숙명을 거부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닭들의 리더. 수탉 록키는 양계장에 날아든 방랑자로, 어둡고 침침한 양계장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또 무엇이든 척척 만들어 내는 기술자 맥, 뜨개질밖에 모르는 뱁스등이 주요 암탉 캐릭터들. 악당으로는 돈만 밝히는 양계장 여주인 위디가 등장한다.
 진흙 캐릭터들의 움직임 또한 '월레스 & 그로밋'보다 훨씬 다양하고 몇몇 부분은 스펙터클하기까지 하다. 수십마리 닭들이 흥겹게 몸을 흔들어대는 댄스파티, 치킨파이를 만드는 자동 기계내에서의 모험극, 목조비행기를 이용한 탈출('벅스 라이프'의 나뭇잎 비행기 활공 장면을 연상시킨다)등이 그런 장면들. 그리고 컴퓨터로 가능한 셀이나 3D 애니메이션에 비해 클레이 애니메이션은 캐릭터들을 일일이 손으로 빚여 만들어야 제작이 가능하기에 놀랍다는 얘기다.
 '치킨 런' 촬영을 위해 제작된 닭들은 A형 약 300개, B형 약 130개. A형은 닭들만 등장하는 장면에, B형은 인간들과 닭들이 섞여있는 장면에 쓰였다. 또 각 닭들을 위해 60여개의 다양한 부리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말할때 입모양이 달라지는 것을 정교하게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준비때문인지 캐릭터 움직임은 셀 애니메이션 못지않게 부드럽고 유연하다.
 '치킨 런'의 캐릭터나 움직임 카메라 워크등은 '월레스 & 그로밋'보다 확실히 발전됐다. 하지만 아쉽게 수준높은 유모와 철학적 사유까지 담아냈던 '월레스 & 그로밋'의 깊은 맛은 희미해졌다. '치킨 런'은 자유를 갈망하는 닭들과 여주인 위디간의 선악대결, 진저라는 소영웅의 등장, 확실한 해피엔딩등 할리우드 오락물 공식을 충실히 따라갔다. 아트만의 장인정신이 할리우드 드림웍스의 오락·흥행전선과 만나면서 어쩔 수 없이 희색될 걸까, 아니면 의식적으로 할리우드 노선을 수용한 걸까!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