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치의 땅굴을 돌아본 이후 다시 호치민시로 와서 '씨클로'(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산책했다. 베트남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해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 베트남에는 베트남 독자적인 문화와 여러 외래 문화가 뒤섞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베트남의 인구는 약 9천만명인데 그 중에 비엣족이 85%를 차지하고 그밖에 테이족, 크메르족, 참족, 타이족, 화교(한족) 등 55개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화교들은 전체 인구의 1.3%를 차지하면서 금융, 기업, 무역 등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1975년 공산화이후 상당수의 화교들이 탈출하거나 축출되었지만 아직도 호치민시의 촐롱에는 60만명의 화교인들이 사는 차이나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 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엣족은 중국 남부에 살다가 중국인에게 밀려 남하한 족속이다. 중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민족이며 현재 베트남의 성향이 중국적인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인지 모른다. 어학적인 것에서도 중국어와 같은 발음이나 뜻글이 베트남언어에는 무수하게 많다. 앞에서 언급한 한인2세 '라이 따이한'도 실제 어원을 보면 '라이(Lai)'는 중국어의 래(來)에서 따온 것이고 '따이한(Daihan)'은 대한민국의 대한에서 따온 말이다. 미국인 2세는 '라이 미'라고 불렀다.
 크메르족은 캄보디안의 후예로 메콩강 유역에 부락을 형성했다. 인도문화의 영향을 받아 불교를 믿으며 사원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참족은 인도네시아계에 속하는 민족으로 2세기부터 중부지방에 왕국을 건설하여 살았는데 힌두교를 믿는다. 지금은 베트남 남부의 판랑에 집중적으로 모여있다. 그밖의 소수 민족들은 주로 산간지역에 화전민촌의 형식으로 거주하는데 그대로 박혀 사는 것이 아니고 이동을 하면서 농사를 짓고 산다. 전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이들 소수 민족이 이동 농업을 하는데 보통 농사를 주업으로 할 경우 정착하는 것이지만,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필자는 '씨클로'를 타고 동코이 대로를 지나갔다. 동코이 대로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1㎞ 정도 사이공 강을 향해 뻗어 있는 번화가이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은 이 길 주변을 통치의 심장부로 조성했다. 그래서 지금도 길 주변에는 프랑스풍의 건물이 많이 눈에 띄는데 세련된 뷰티크와 레스토랑이 많다. 프랑스가 물러가자 베트남의 대통령 고딘 디엠은 이 거리를 자유라는 뜻의 투도로 바꾸었다. 그후에 미군이 들어오면서 거리는 술집들이 생겨났고, 전쟁중에는 매춘지역으로 활개를 쳤다. 사회주의 정권이 세워지면서 이 거리는 봉기라는 뜻의 동코이로 바뀌어 현재까지 불리고 있다. 지금 동코이 거리에는 호텔과 특산품 가게가 들어섰고 관광객들의 주요 관광코스가 되고 있다.
 동코이 대로 주변에는 호치민시의 과거를 반추할 수 있는 통일궁이 있다. 통일궁은 1868년 프랑스 총독의 공관으로 건축되었다가 후에 고딘 디엠 대통령의 궁으로 사용되었다. 그때는 독립궁으로 불렸다.
 1975년 4월 30일 오전 10시, 불과 이틀전에 베트남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었던 민장군이 접견실에서 월맹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월맹군이 들이닥치자 민대통령은 “오늘 아침부터 당신들에게 권력을 이양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월맹군 장교가 “당신이 권력을 이양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이미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사회주의 통치체제로 넘어가면서 대통령관저였던 독립궁도 명칭이 바뀌어 통일궁이 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
 4층으로 되어 있는 통일궁의 1층에는 대통령 접견실과 국무회의실, 대형 식당이 있고, 정면 중앙에는 통일 베트남 정권의 국부인 호치민의 흉상이 있다. 흉상 뒷벽에는 '강물을 둘로 가를 수 없듯이 베트남은 갈라질 수 없다'라는 호치민의 어록이 있다. 2층은 남부 베트남 시절에 주로 대통령 집무실로 쓰이던 곳으로 민 장군이 항복 문서를 조인하기도 했던 접견실이 있다. 3층은 대통령 전용 공간으로 극장, 오락실, 식당과 대통령 카드 놀이방이 있던 곳이다. 4층은 대통령 전용 연회장과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월남군 총사령부였던 종합 상황실이 있었다. 지하층의 천장과 벽은 두께 1.6m가 되는 철판으로 되어 있고, 총사령관실과 전투 부대 사이를 연결하는 직통 통신실, 비상시 대통령 침실이 좁은 통로를 따라 나란히 있었다. 총사령관실의 벽에는 월남군과 베트콩의 배치 상황과 이동로를 표시한 12개의 지도가 붙어 있었다. 베트남 정부는 당시의 종합상황실을 그대로 보존하여 놓고 관광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 상황실을 나오면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방이 있고, 그 방을 지나면 사진 전시실이 있다.
 이 전시실에는 75년 4월 30일 소련제 탱크가 대통령궁 철문을 부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