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신고전주의시대에 태동한 멜로드라마는 '내가 현실에서 겪고 싶은 운명적인 사랑 또는 비련의 삶을 영화속 누군가가 대신해 준다는 감정이입의 힘때문에 긴 생명력을 가져왔다. 멜로드라마의 주된 자가발전 동력 역시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선남선녀가 물리적 환경으로 인해 원치않는 이별을 한다'는 기본 틀 말이다.
 '번지점프를 하다'(2월 3일 개봉)의 서인우(이병헌)와 인태희(이은주)도 원치않는 이별을 한다. 17년전 비오는 어느날, 버스정류장에서 우산으로 인연을 맺은 인우와 태희는 80년대 공간에서 80년대식 연애방정식을 풀어간다. 포니 자동차, 바람머리, 주름 선 양복바지, DJ가 있는 음악다방, 허름한 여관방….
 386세대에겐 진한 커피같은 이런 풍경은 그러나, 인우의 군입대와 태희의 교통사고 사망으로 일찌감치 마침표를 찍는다. 원치않은 이별과 여성의 부재(不在)라는 면에서 전반부의 흐름은 정통 멜로 그 자체다. '번지점프를 하다'가 기존 멜로와 차별성을 보이며 반짝반짝 빛나는건 중반부 이후다.
 현재 고등학교로 무대를 옮긴 영화는 교사가 된 인우가 동성의 제자 현빈(여현수)에게 무한한 애정을 헌사하는 야릇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눈썰미있는 관객이라면 영화가 이 부분에서 현빈으로 다시 태어난 태희, 즉 '환생'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멜로의 기본 틀에다 동성애및 환생이라는 N세대적 감성 코드를 조합시킨 영화는 그래서 정통 멜로의 궤도에서 훌쩍 벗어났다.
 인정받을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하기보다 줄없는 동반 번지점프로 영원한 사랑을 택하는 결말까지 영화는 새로운 멜로 감성의 끈을 동여맸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훌쩍 뛰어넘은 이병헌의 가슴아픈 페이소스. 눈 많이 내리는 올 겨울을 누가 대신? '서편제' '춘향뎐'의 조감독 출신 김대승 감독은 질문에 답을 툭 던지며 운명적인 사랑, 가슴아픈 삶을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급박하게 풀어냈다.
/金淳基기자·islandki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