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크빈트 부흐홀츠가 그동안 작업한 표지화와 삽화들을 모아 가져왔다. 책들의 비밀스런 생애를 드러내는 독특한 작품들이었다. 출판업자 미하엘 크뤼거는 그 그림들을 보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는 이 그림들을 전세계의 46명의 작가들에게 보냈다. 감상과 함께 그 그림속에 들어있는 내용에 대해 몇자 적어달라는 부탁을 함께 보냈다. 밀란 쿤데라를 비롯한 세계적인 작가들이 글을 보내왔고 그 그림과 글들이 모여 한권의 책이 완성됐다.
 '책그림책'(민음사 刊)은 이렇게 탄생했다. 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책에 생명을 불어넣은 한 위대한 책 예술가를 위해 전세계 작가들이 보낸 메시지가 책으로 엮인 것이다.
 1957년생인 크빈트 부흐홀츠가 이들 그림을 그릴 당시는 마흔을 갓 넘긴 상태였다. 하지만 그림들이 지니는 독특한 매력에 매료된 작가들은 아낌없이 귀중한 글들을 보내주었다.
 크빈트 부흐홀츠의 그림은 노골적으로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치 동화같은 나직함이 있다. 하지만 일상에 길들여져 있는 감각의 관행을 거부하고 뒤집는다. 작가들은 그의 그림이 내는 나직한 소리를 듣고 감동한다.
 사람이 책을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그림을 본 라인하르트 레타우는 “무엇 때문에 나는 책과 함께 멀리 대기 속을 날아왔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다리(足) 아래 책을 달고 날아가면 결코 혼자가 아니다”라는 말로 작가로서의 행복감을 표시했다.
 또 커다란 혀가 책을 비집고 나온 그림을 본 코레이거선 보일은 “책이 움직였고 스스로의 힘으로 책장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의 한가운데에서 촉촉하게 습기에 젖은 장밋빛의 혀가, 말을 하는 생명체의 혀가 서서히 나타났다”며 그림을 본 순간의 놀라움을 전했다.
 이 책에는 이외에도 책이 내는 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 배에 책을 가득 싣고 떠나는 사람, 높은 책에게 모자를 벗고 인사하는 사람, 책을 덮고 자는 아이, 가위에 찍혀 피를 흘리는 책 등등 책의 가치와 역사를 풍자한 많은 그림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 그림을 보고 던져진 작가들의 글은 때론 이해하기 어렵고 때론 가슴을 찌른다. 하지만 이 책을 보는 독자가 해야할 일은 작가들의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생명의 불씨를 자신의 마음속에 다시금 불어넣는 것이다.
/朴商日기자·psi2514@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