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클래식 문화가 다시 꽃피는가. 지난 3일 신임 박은성 상임지휘자 체제로 열린 수원시향의 제117회 정기연주회(경기도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는 정통 클래식음악의 회복과 클래식 문화의 부활을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실 시향은 지난 3~4년간 지역 클래식 애호층으로부터 외면당해왔다. 전임 금난새 지휘자가 클래식의 대중화라는 성과를 거둔뒤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채 한계를 드러냈고, 시향은 내분에 빠져들었다. 외면상으론 수원국제음악제 등 화려한 행사가 잇따랐지만 이는 전적으로 스타시스템에 의존한 것이었다. 청중과의 유대감 없는 연주회는 아무리 화려해도 공허한 법이다.
 그런데 이번 연주회는 사뭇 달랐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과 교향곡 2번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한 이날 연주회도 소음과 무례함이 돌출, 감상을 방해했지만 적잖은 성인 애호층이 진지하게 연주를 음미했다. 작은 망원경과 손전등까지 채비해온 허연 수염의 노인도 있었다. 뭔가 다르기를 기대하고 온 청중들인 것이다.
 시향은 오랜만에 나타난 이 귀한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전에비해 음량과 음색이 한결 풍부하고 부드럽고 우아했으며, 파트별 소리도 확연히 정련돼 있었다. 오케스트라 배치도 변화를 줘 제2바이올린을 우측 앞으로, 콘트라베이스를 뒤쪽 왼편에 둔 유럽형(브람스 방식)이었다. 김대진과 협연한 피아노협주곡 2번은 협연자와 오케스트라가 각자 너무 치밀하지 않았나 싶다. 2악장은 좀더 긴밀한 대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3악장은 오케스트라와 협연자가 좀더 전투적으로 맞붙어줬으면 하는 감이 없지 않았으나 김대진의 개성은 돋보였다. 시향은 교향곡 연주에서 빛을 발했다. 박은성은 마라토너같은 호흡조절로 마지막까지 오케스트라를 완벽하게 조율했고 청중들도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연주뒤 그칠 줄 모르는 우레같은 박수는 새로운 지휘자에 대한 신뢰와 변화하는 시향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었다. /柳周善기자·j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