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기들면서 우리나라 출판시장은 '판타지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몸살을 앓았다. 이미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와 같은 환상의 세계에
익숙해져 있는 신세대들은 그들의 입맞에 딱 맞아떨어지는 판타지 소설에
열광했다.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두터운 판타지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판
타지 소설들은 잇따라 베스트셀러를 휩쓸며 문학의 새로운 장르로 자리매김
했다.
 1993년 여름, PC통신 하이텔 'Summer'란에 게재되기 시작하면서 폭발적
인 인기를 모은 이우혁의 '퇴마록'이 그중 하나. 엔지니어 출신의 아마추
어 작가였던 이우혁은 평균 조회수 4천회, 고정독자 1만여명이라는 기록적
인 인기를 누렸고 곧이어 출간된 단행본은 지금까지 총 18권이 발간되며
400만부를 훌쩍 뛰어넘는 경이적인 판매기록을 세웠다.
 97년 가을부터 하이텔에 연재된 이영도의 '드래곤라자'는 우리나라 판타
지문학의 물꼬를 튼 작품으로 총 12권이 발간돼 각권당 20만부가 넘는 경이
적인 기록을 세웠고 게임으로 만들어져 국내는 물론 대만에까지 수출돼 인
기를 누렸다. 이영도는 지난해 전 8권의 '폴라리스 랩소디'를 발표했고, 1
천560쪽에 달하는 한정판 호화 양장본은 500권이 단숨에 매진되기도 했다.
 김예리의 '용의 신전'도 PC통신 연재당시 100만건의 접속건수를 자랑한
후 단행본으로 출간돼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전세계를 판타지 소설의
열풍에 밀어넣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도 이런 맥락의 하나. '해
리포터'시리즈는 전세계적으로 1억권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의 판
매기록을 세웠다.
 마법의 세계가 등장하고 난쟁이와 기사가 등장하는 이들 판타지 소설들
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미
컴퓨터 게임을 통해 서양적 판타지 세계에 익숙해진 신세대들은 이런 배경
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판타지 소설은 특히 막대한 판매고뿐 아니라 영화와 게임, 캐릭터 등과
접목되며 무한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이 기존 문학과 구별된다. 신
세대와 자본의 입맛을 모두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문학으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