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은 지난 10년 동안 백제왕성으로 유
력시되던 인근 몽촌토성보다도 시기적으로 2단계나 앞선 백제왕성 즉, 하남
위례성이 유력하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굴보고서가 20일 발간됐다.
지난 97년 토성 안쪽 2군데 재건축아파트 예정지에 대한 발굴성과를 정리
한 이번 「풍납토성Ⅰ」 보고서는 국배판 2권에 총 1천20쪽에 달하는 방대
한 분량으로 1권은 본문과 도면을, 2권에는 관련 사진과 출토유물에 대한
몇 가지 자연과학 분석결과를 담고 있다.
보고서는 주거지 19기를 비롯한 유구 70여기와 풍납동식 무늬없는 토기
등 총 1천200점에 달하는 중요한 유물의 설명과 실측도면 1천300장 외에
발굴당시 광경과 유물 출토 상황 및 유물 복원상태를 담은 사진 1천600장
을 수록하고 있다.
연구소는 발굴결과 풍납토성에는 기원전 1세기 무렵에 이미 사람이 정착
하기 시작했고, 서기 475년 고구려 장수왕 침공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
을 천도하기까지 한성도읍기 백제 전기간을 표방하는 주거지와 유물이 다
량 확인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들 유적과 유물을 층위별로 모두 4단계의 시기로 구분하고 있
다.
즉, 가장 빠른 1기(기원전 1세기-기원후 2세기)는 풍납동식 무늬없는 토
기와 3중 환호 유구가 대표적이며, 2기(2세기 전반-3세기 전반)에는 25평
을 비롯해 평면 6각형 모양 움집 주거터 17기가 속하며, 3기(3세기 중반-4
세기 중반)는 회청색 경질토기와 회청색 도질토기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
데 중국 도자류도 섞여 있다는 것이다. 475년 무렵까지인 마지막 4기는 발
달된 토기가 다종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하고 있다.
이로 미뤄 볼 때 풍납토성 제3기는 1980년대에 대대적으로 발굴된 몽촌
토성 문화층 중에서도 가장 빠르다는 이른바 '몽촌1기'에 해당되며, 따라
서 풍납토성은 몽촌토성보다 (축조)시기로 볼 때 2단계나 빠르다는 사실
은 출토 유물뿐만 아니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로도 뚜렷이 확인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는 풍납토성 내부에서 확인된 주거터가 대체로 길이 10m, 폭 7m 안
팎으로 지금까지 확인된 백제시대 주거지로는 가장 큰 규모와 정형화된 틀
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 출토유물에서도 고급화된 기종의 토기류와 기와,
전돌 및 중국계 도자기가 다량 포함돼 있는 점으로 보아 풍납토성의 위상
이 지금까지 확인된 다른 유적보다 월등했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풍납토성은 지금까지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고 있는 한성도읍기
백제왕성 하남위례성일 가능성이 한층 커졌다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이번
보고서가 발간됨에 따라 일제 식민사학의 영향 아래 3세기 중.후반 고이왕
이전 초기사가 말살.왜곡된 백제사는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으며 특히
몽촌토성 발굴 성과를 기초로 3세기 중.후반을 출발로 삼았던 백제 토기편
년 또한 붕괴됐다.
풍납토성에 대한 보고서로는 1967년 당시 서울대 김원룡 교수가 토성 북
쪽에 판 구덩이 8개에 대한 시굴 보고서가 있고 지난 97년 선문대 이형구
교수의 토성 전반에 대한 실측조사 보고서가 있을뿐, 정식발굴보고서는 이
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연구소는 지난 99년 동쪽 성벽에 대한 발굴성과를 담은 발굴보고서
를 「풍납토성Ⅱ」라는 이름으로 올해 안에 펴낼 예정이며 풍납토성 축조시
기 등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는 이 두번째 보고서로 미뤘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