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레라 환자가 100여명을 돌파하였다. 설사 환자로 이 병이 의심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200여명을 넘길 추세다. 많은 여론매체에서는 이런 '후진국병'이 다시 대규모로 유행함으로써 당국은 그동안 무슨 일을 했으며 국민들은 개인 위생을 어떻게 했는지 개탄하는 목소리가 드높다.
그러나 문제가 콜레라만은 아니다. 10년 가까이 뜸했던 홍역이 다시 창궐하더니 이제는 인천 인근의 강화와 김포지역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증가한다고 난리들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광우병 때문에 쇠고기 소비가 크게 줄었고 우리나라도 더 이상 이 병의 안전지대가 아님은 확실하다. 문란한 성생활로 인해 이제는 국내 여성의 20%가 자궁암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몸에 지니고 있다는 보고도 나왔다.
최근까지 의사들은 이런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병들을 '거의' 정복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세균은 항생제로 치료하고 바이러스는 백신으로 예방하면 되니까. '후진국병'이라는 희한한 개념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등장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과거의 헛된 희망에 불과했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감염병(병균이 일으키는 병)의 창궐은 이제 전세계적인 문제가 되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에이즈와 같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병이 등장하는데다가 기존의 질병들도 항생제에 내성이 생겨 치료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질병도 인간과 더불어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질병의 진화, 혹은 변형은 인류문명의 발달이 그 원인이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 북부지역의 풍토병이었지만 교통수단의 발달은 이를 전 세계적인 문제로 만들었다. 아무리 철저한 검역을 한다 해도 하루에 수만명씩 쏟아져 들어오는 해외 관광객과 여행자들을 단속하기는 불가능하다.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급식산업과 패스트푸드 산업의 발전으로 한 사람의 오염원으로부터 병균이 수만명으로 확산되는 것이 가능해졌다.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의 낙농제품은 전 세계로 수출되며 만약 병균이 있다면 그것도 함께 간다.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섹스관광산업은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성병을 동시에 옮겨온다.
이렇듯 일상의 위험은 테러나 전쟁에만 있지 않다. 문명이 발전하면 편리함도 증가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험 또한 늘어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대가없는 발전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 험난한 세상에서 무사히 살아남으려면 우리는 더 큰 지혜와 노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권복규(가천의대 의사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