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처음 선보인 '흑수선'(16일 개봉)은 영화제 초반을 장식한 최고 '이슈'였다. 개막작이라는 프리미엄에다 80년대 최고 흥행사에서 90년대 작가주의를 거쳐 2000년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되돌아온 배창호 감독에 대한 관심 등이 겹쳐 '흑수선'은 개막작으로서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영화는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2001년 서울과 거제 그리고 일본 미야자키를 오가는 시공간속에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축으로 미스터리, 액션, 좌우 대립과 분단역사 등을 버무렸다. 한강에 떠오른 의문의 시체를 시작으로 오형사(이정재)가 반세기동안 엇갈린 손지혜(이미연)와 황석(안성기)의 비극적인 운명과 사랑, 이들을 둘러싼 한동주(정준호), 양달수(이기영) 등의 음모와 배신을 파헤친다는 줄거리.
영화의 장점을 꼽는다면 일단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사건을 미스터리로 재구성, 긴장감을 자아낸다는 점이다. 잘 짜여진 현재진행형의 사건은 빠른 화면 전개, 화려한 액션 등과 맞물려 흥미를 증폭시킨다. 데뷔때부터 변함없이 견지해온 배창호 감독 특유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영화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분단'이라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우리 역사를 끌어들인 점도 최근의 가벼운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는 부분이다.
이와함께 영화는 아쉬운 부분도 곳곳에서 노출시킨다. 남로당 간부의 딸로 포로탈출을 도왔던 손지혜와 이런 손지혜를 보호하기 위해 50년간 미전향 장기수로 감옥살이를 한 황석사이에 진행되는 멜로의 경우 보는 이들을 흔들만한 울림이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멜로를 영화의 중심으로 세우려했지만 스펙터클과 미스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것이다.
황석이 50년간 전향하지 않은 이유가 단지 손지혜때문이라는 점이나 포로로 대표되는 좌익을 강간, 폭력, 배신 등으로 그려내 반공영화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점 등은 역사를 끌어들였으면서도 그 역사를 깊이있게 수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을만하다. 50년을 넘나드는 배우들이 그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으로 꼽힌다.
하지만 '흑수선'은 영화제 개막작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나쁘게 평가받을 만한 수준은 아니다. 감정이나 역사의 깊이는 아쉽지만 완성도나 오락성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을 보여주기 때문. 또한 '블록버스터'로 되돌아온 중견 감독 배창호가 일반 관객들을 향해 자신의 부활을 선포했다는 점도 중요한 부분이다. <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