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무용의 기초를 다진 월북 무용가 최승희(崔承喜)의 파란만장한 생
애를 그린 16mm 다큐멘터리 영화 ’전설의 무희 최승희’가 내달 7-9일 호
암아트홀에서 상영된다.
일본의 여성감독 후지하라 도모코(藤原智子.68)씨가 연출한 이 영화는 지난
해 8월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유명한 도쿄 이와나미(岩波)홀에서 처음 상영
된 뒤 이번에 한국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김매자가 찾아가는 민족의 혼’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 한국 창작무
용가 김매자(창무예술원 이사장)씨가 일본-중국-한국 등지로 최승희의 족적
을 찾아가는 리포터가 되어 안내를 맡는다.
1911년 11월 24일 서울에서 최준현과 박성녀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최승
희는어려서부터 성적이 우수해 소학교를 4년만에 졸업하고 숙명여자고등보
통학교에 입학했으나 그 뒤 연령미달로 자신이 원하는 도쿄(東京)음악학교
나 경성사범학교 같은곳으로 진학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열린 일본 전위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에
감명받아 무용을 배우기로 결심, 도쿄로 건너가 이시이 바쿠 무용단에서 수
학.활동한다.
최승희는 열 아홉살이던 29년 귀국, 서울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설립
하고 한국무용 ’영산춤’을 처음으로 공연했으며 조선 전통춤에 현대무용
을 가미한 새로운개념의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춤 세계의 새로운 장을 열
었다.
이어 37년부터 3년간 미국, 유럽, 중남미 등 각지의 일류 무대에서 해외공
연을하며 ’동양의 진주’라는 절찬을 받았다. 존 스타인벡, 파블로 피카
소, 앙리 마티스,장 콕토와 조우언라이(周恩來) 등이 그의 춤을 관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뉴욕 공연에서는 반일운동을 하는 동포들로부터 규탄받았을 정도
로 ’친일파’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후 최승희는 문인이었던 남편 안막(安漠)을 따라 월북, 평양의 ’국립 최
승희무용연구소’에서 활동하며 ’조선민족무용 기본’ 등을 발간했으나,
남편이 숙청당한데 이어 67년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승희의
그 뒤 행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소문만 무성할 뿐 확인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김매자씨는 최승희의 제자였던 전황(全璜) 전 국립창극단장을 비
롯해한국무용계의 원로 김천흥, 평론가 채희완씨 등과 인터뷰하며 최승희
의 춤이 훗날한국 창작무용 형성에 미친 영향을 탐구한다.
또 이시이 바쿠의 아들 이시이 칸과 제자인 이시이 미도리, 연극평론가 오
자키고우지 등 당시의 최승희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채취하며 그의
발자취를 쫓아간다.
최승희 춤에 대한 사진자료는 물론 외국 공연시 제작됐던 선전용 영상물도
등장한다. 이 영화는 99년 일본 ’사이타마 국제영화제’ 개막 초청작, 같
은 해 도쿄영화제 특별 상영작으로 개봉된 바 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