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의 심장 소리>
1970년대 초 우리나라에 최초로 초음파 의료기기 4대가 도입되었다.
가격은 4천만원 정도로 당시 화폐 가치를 감안할 때 이는 큰 금액이었는데
그 중 한 대가 이길여 산부인과의원에 들어왔다.
국내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대학 부속 종합병원에서도 처음으로 초음파
의료기기를 들여오는 상황인데 이길여는 개인 산부인과 의원을 운영하면서
이를 구입했던 것이다.
투자비용에 대한 수익 가능성을 계산한다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
었다.
이길여가 초음파 기기와 같은 고가의 첨단 의료장비를 과감하게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그의 생활습관과 큰 연관이 있었다. 이길여는 학교 동창
이나 친구 등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여성들과는 달리 보석과 반지 등 귀금
속에 그다지 관심이나 애착을 느끼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아주 특별한 자리
를 제외하고는 병원이건 학교이건 간에 휘황찬란한 목걸이나 귀걸이, 반지
를 해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국내 처음으로 초음파기기를 들여오기 직전
에 이런 일이 있었다.
1970년대 초였으니 이길여가 마흔을 갓 넘겼을 때인데 어느날 모임에서 한
친구가 무려 3천만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와서 보여주었
다. 이길여를 비롯한 친구들은 부러운 마음으로 그 반지를 서로 제 손가락
에 껴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참으로 멋지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다이아몬드 반지였다.
사치를 멀리하는 이길여였지만 40대 초반의 여느 여성처럼 그 반지의 광채
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길여도 반지의 주인인 친구에게, "참 좋구나. 아주 멋진걸... ." 하며 부
러워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 반지 값이 너무도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을 알고서는 부러움보다 그만한 돈을 쓴다면 많은 사람들,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반지야 아무리 멋져도 나 혼자 만족하는 데 그치지만 좋은 의료기기를 산다
면 수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으니 같은 돈을 들여도 훨씬 보람있
게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초음파 의료기기를 도입할 수
있게 됐을 때 기꺼이 구입에 나섰던 것이다.
전국적으로 4대뿐인 초음파 의료기기가 서울의 대학병원 3곳을 제외하고는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이길여의 산부인과 의원에만 있었으니 그에 대한 환자
들의 기대와 호기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초음파기를 통해 태아의 상태를 설명해주면 산모들과 그의 가족들은 너무
도 신기해하고 고마워했다.
특히 7∼8주쯤 지난 태아의 심장소리를 초음파기로 들려주면 "터커덕, 터커
덕... ." 하는 아기의 심장 소리에 놀라고 신기해하며 크게 기뻐했다.
아기 심장 소리를 듣고서는 집에 가서 다른 식구들까지 더 데려와서 다시
한번 들려달라고 부탁해서 또 들려주곤 했다.
초음파기의 아기 심장 소리는 인천시내에 선풍적 인기를 몰고 왔다.
돈 버는 일보다는 환자들을 위해 돈을 써야겠다는 뜻에서 초음파기를 들여
왔는데 환자들이 더욱 많이 몰려드는 결과가 되었다.
<정성을 다하면>
이길여는 병을 잘 진단하고 잘 고치는 명의로 이름이 높아졌다.
아무리 아픈 사람도 이길여에게 가면 쉽게 낫고 위급한 생명도 구한다고 소
문이 났다.
이길여는 "요즘 미국에서 문제가 심각한 탄저균에 감염되면 항생제로도 치
료가 잘 되지 않아 걱정인데, 그때 환자들은 균에 대한 내성이 없어 웬만
한 질병에는 항생제가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다"며 "치료를 받지 못하면
죽을 환자들도 일단 병원에만 오면 항생제 덕분에 바로바로 효과를 보았
다"고 회고했다.
당시엔 영양실조가 많아 인체가 질병의 온상이다시피 했다.
진찰해보면 환자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여러 질병이 몸에 숨어 있는 것이
밝혀지곤 했다.
환자들이 균에 대한 내성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치료만 하면 잘 낫는 반
면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길여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정성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노인병이나 암 같은 질병이 아닌 경우에는 갑자기 중태에 빠지거나 돌
연사 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도 의사가 얼마나 환자를 살려 내고자 하는
의지와 정성이 있느냐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자신이 그같은 경험을 수도 없이 해왔다고 한다.
한번은 인천에서 지역사회의 리더이자 재계의 어른이었던 어느 분이 골프
를 친 후 위험한 상태에 빠져 길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실낱같은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위기의 상황이었다.
이길여는 그때 일을 기억하면서 "인천을 위해 꼭 필요한 그분이 돌아가셔서
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며 "의사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