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무협물이라는 이름을 단 '화산고'(8일 개봉)에서는 이처럼 현실밖의 일들이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달고 활개를 친다. 무협지나 만화 마니아들에겐 친숙한 것일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관객들에게 '화산고'는 분명 낯선 장르다. 하지만 영화는 매혹적이다. 무협지의 활자와 만화의 그림이 둥둥 떠다니는데, 어찌….
무협지와 만화의 상상력을 어떻게 '스크린화'해낼 지 관심을 끌어왔던 '화산고'는 영화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특수효과면에서 지금까지의 한국영화들보다 한 단계 더 발전된 수준을 보여준다. 우선 영화는 디지털 특수작업을 통해 전체적으로 흰색과 검은톤이 두드러진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독특한 색감의 화면은 판타스틱한 스토리를 제대로 뒷받침하고 있다.
기공의 흐름을 표현해낸 장면이나 물방울이 분사되는 장면, 물기둥이 치솟는 장면등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접할 수 없었던 볼거리들. 순수 국내 스태프들이 만들어낸 와이어 액션은 '와호장룡'이나 '매트릭스'를 연상시킬만큼 현란하다. '박봉곤 가출사건' '키스할까요'를 연출한 김태균 감독은 “이 영화 전체가 컴퓨터속에 담겨졌다 나왔다”고 표현했다. 수준급 특수효과는 올 한국 영화계가 거둔 하나의 수확이라 할만하다.
때는 화산 108년. 무공의 고수들만 다니는 '화산고(高)'에 '기물파손'등으로 8번이나 퇴학당한 김경수(장혁)가 전학온다. 이번엔 죽어도 졸업만은 하겠다는 각오의 김경수. 그러나 그의 타고난 공력을 알아본 검도부 유도부 등에서 입단 제의가 잇따르면서 화산고의 세력 판도에 변화가 발생한다. 김경수는 전설의 무림비서인 '사비망록'을 둘러싼 혈투에 휘말리고….
영화는 상상력을 특수효과로 재현해낸 만큼 캐릭터나 대사, 기법 등에서도 정공법을 한참 비껴간다. 등장 인물들은 심각한 상황에서 갑자기 뜨악한 표정을 짓고 “남자는 사랑을 구걸해서는 안된다”는 등의 70년대식 대사를 날린다. 각 인물이 등장할때는 주특기 권법과 이력이 사극 분위기의 내레이션과 함께 자막을 통해 소개된다. 화면 분할 등의 기법은 기본. 감독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재미'라는 의도에 충실한 연출력을 과시했다.
윤문식, 변희봉, 허준호등 중견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와 비교되는 신민아등 신인들의 부자연스러움, 일본 만화의 색채, 화산고 제1인자 송학림에 대한 미흡한 설명이나 완급 조절의 밋밋함 등은 아쉬운 부분. 순제작비 48억원에 1년 5개월간의 제작기간이 투입됐다.